옷에 구멍 뚫어야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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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오후 3:36:11

샤넬의 ‘2011 S/S 프레타포르테’ 작품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바지가 있었다. 워싱 처리된 데님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이었다. 샤넬 매장에 가보았다. 컬렉션에서 선보인 똑 같은 바지는 없었지만 바지 한 벌 값이 140만원에서 700만원대까지 고가였다. 20세기 들어 과학의 발전은 대량 생산 체제를 낳았다. 복식에서는 기성복 시대가 열렸고, 많은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게 됐다. 그리고 자아 상실,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문제가 뒤따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청소년들은 이 같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기성 세대의 규범과 문화에 저항했다. 이들의 하위 문화는 60년대와 70년대의 히피와 펑크 스타일을 통해 '충격 효과‘를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자아 정체감을 회복하고자하는 함성을 질렀다. 같은 맥락에서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구속받지 않고 편한대로 입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반영된 ‘그런지’ 패션이 유도되었다. 몇 겹이고 겹쳐 입어 너절너절한 스타일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거지 룩’이라고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빈티지가 가세했다. 빈티지 패션이란 ‘오래된 느낌’ ‘낡은 느낌’ ‘바랜 느낌’ 등의 이미지를 가진다. 과거의 옷이나 중고 의상을 즐겨 입는 경향이나 풍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하위 문화로 파생된 중고 스타일은 기성 세대에 대한 강한 반발 그리고 반물질주의의 저항 의식과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고자하는 절규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복식에서 미(美)와 추(醜)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흔들어 버렸다. 중고 가게에서 샀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스타일로 누덕누덕 깁거나 탈색된 낡고 구멍 뚫린 진, 제멋대로 연출한 어이없고 추레한 차림새, 더럽고 가난해 보이는 외모를 통하여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좌절과 물질 주의에 대한 항거, 기계 주의에 대한 회의 등을 표현했다. 이 같은 반문화적 스타일은 비비안웨스트우드, 마크제이콥스, 안나수이, 돌체&가바나 등에 의해 상류 사회에서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처음 유행한 것은 15세기였다. 1477년 버건디 공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스위스 군사들이 너덜너덜해진 군복을 전쟁터에 남겨진 텐트의 끈 같은 것들로 대충 여며 입었다. 특히 이 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했던 독일 병사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새 천을 찢어야 하는 이 유행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유행은 더 퍼져나갔다. 당시 한 남성의 상의에 4800개의 slash(자른 구멍)가 있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대를 초월하여, 구멍을 뚫어 입는 이 유행은 때론 극한 상태의 감정을, 때론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부터, 또는 기성세대에 대한 강한 반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저 밑바닥에서 끓고 있는 용광로 같은 감성을 옷에라도 풀어야 하는 나약한 삶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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