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있는 디자인으로 세계를 매료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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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⑳-레이 가와쿠보 4

2010-11-26 오후 6:22:05



디자인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수능점수처럼 몇 점 이상은 일류대, 몇 점 이상은 인 서울, 이렇게 나눌 수는 없겠지만 분명 차원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디자인이 있기 마련이다. 명품이라 불리는 패션 브랜드에서도 그 급이 다름이 느껴진다. 단순히 역사가 오래됐거나, 고가의 소재를 쓰는 것 말고 디자인 자체에서 느껴지는 내공이 다른 것이다. 


디자인의 깊이를 결정짓는 개념
꼼 데 갸르송의 옷이 그렇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 하지만 찬찬히 곱씹고 되새김질 하다보면 무릎을 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그녀가 개념을 건드리는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옷이다. 아무리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녀는 이 옷으로 옷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전에 본 적 없고, 반복된 적 없는 것, 대신 미래에 대한 새로운 발견, 그것은 사회적 편견으로의 해방과 활기참이다.”
1997년 이 옷을 발표하면서 꼼 데 갸르송이 내놓은 메시지이다.


앞에서 소개한 서양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서 나타났던 옷이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사람들에게 옷을 선보였다. 그것을 우리는 고전주의자라고 표현했다. 돌체 앤 가바나, 장 폴 고티에, 존 갈리아노 등의 옷을 보면 단번에 예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그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어느 시대에서 영감 받은 옷, 직업적 특성이 드러나는 옷, 어느 나라의 전통 복식에서 영향 받은 옷 등이 직감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도감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서구인의 미감으로는 그것을 깨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동양에서 온 레이 가와쿠보는 그랬기 때문에 그러한 서양의 미의식과는 다른 미의식을 갖고 있었다. 몸에 구속되어 있는 서양식 옷의 개념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옷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②도 몸과 별개의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옷이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기모노처럼 몸을 굴곡 없는 일자 형태로 보여 지게 한다. 저걸 입고 움직일 수 있을까 싶지만 잘 살펴 보면 인체의 활동을 고려하여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옷의 신선한 점은 실루엣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옷이라는 것이다.  마치 종이로 부채를 접듯이 원통형의 천을 아코디언 주름을 잡았다. 상의 쪽은 위, 아래를 실로 고정을 하였지만, 치마는 아래 부분을 터놓아 움직임에 따라 넓게 펼쳐질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실루엣뿐만 아니라 보관 방식도 동양적이라는 것이다. 몸을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단단하게 하여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코트나 드레스는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옷걸이에 걸어 보관해야 한다. 바닥에 내려놓아도 어깨나 가슴 부분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의 옷은 전통적으로 접어서 보관하게 된다. 바닥에 펼치면 평평하게 2차원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사진 ②의 옷도 그 주름 잡힌 구조상 그대로 접어 눕혀서 보관하게 된다.


무늬나 색도 일본적이다. 자연적인 느낌은 들지만 밝고 활기차기 보단 회색기운이 돌아 차분한 분위기인 저채도 색이다. 무늬는 마치 한지 창문에 비친 나뭇잎 그늘 같다. 소재도 천연 재료 같다. 심지어 종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목 부분은 마치 기모노의 깃 같다. 여러 면에서 일본 옷을 연상케 하는 옷이다. 
이렇게 그녀는 개념을 건드리면서 디자인의 구성적인 면, 즉 색이나 소재, 무늬 등에서도 개념과 일관되게 디자인 하고 있다. 의도적인 것인지 그녀의 무의식인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일본성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인을 매혹하고 있다.


뇌를 자극하는 디자인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이 있다. 어느 평론가로부터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 자살해 버리는 어느 화가의 이야기다. 왜 작품에 깊이가 있어야 하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디자인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깊이, 가치, 가격은 결국 다 같은 말이다. 고상하게 말해 깊이가 있어야 되는 것이고, 깊이가 있다는 것은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 가치는 시장의 가격으로 평가가 된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타인이 나의 작품을 비싸게 주고 산다는 것은, 옷으로써의 단순한 기능 이상의 것이 충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창작물의 가치, 다시 말해 가격을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왜 루이비통 가방과 동대문에서 만들어지는 가방의 가격 차이가 그렇게 나는 것일까. 그러고도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을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단순히 디자인이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디자인은 기본이고, 소재, 만들어짐의 완성도, 그리고 그 디자이너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만들었는가, 그 생각의 결과가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가, 나와 교감을 하여 만족을 주는가로 가치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는 그 오래된 역사를 버텨온 저력을 돈으로 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길지 않으면서 짧은 시간에 명품의 반열에 오르는 브랜드의 힘은 무엇일까.


피부색의 의상은 패션 디자인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피부의 확장처럼 보이므로 마치 누드인 것 같은 깜짝 놀람, 눈속임을 통한 즐거움, 신체의 확장으로 인한 아름다움의 추구 등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마르틴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에서 반쪽만 입은 것 같은 재킷이 나, 샤넬의 투톤 슈즈가 그랬듯이 말이다.


사진 ③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레이 가와쿠보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왜 몸이 옷을 입어야 하는가. 옷이 몸을 입으면 안 되는가.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모델의 하얀 실루엣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실루엣이 아니다. 훨씬 축소된 실루엣으로 가짜 선을 그려놓은 것이다. 단순히 착시로 인한 즐거움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옷으로 진짜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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