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디자인 개념있는 옷 만드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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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가와쿠보 3

2010-11-19 오후 3:54:31



같은 검정과 흰색을 쓰는데도 샤넬은 권위적인 서양의 종교적인 색채가 나고, 레이 가와쿠보의 옷은 시공을 뛰어넘는 무위자연의 도인이 생각난다. 왜 같은 색을 쓰는데도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일까?

색보다 형태
옷은 인체를 따른다. 더 정확히는 옷은 ‘나’를 돋보이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듯 ‘나’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따라서 ‘나는 주인, 옷은 나를 따듯하고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부산물’로 규정했다. 이러한 나의 신체가 균형 잡힌 좌우대칭형이니 옷도 좌우대칭형을 따를 수밖에.

그런데 이 좌우대칭형의 특징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균형이 잡혔다는 것인데, 이 균형이라는 것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더 나아가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건축물로는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중세의 교회나, 절대왕정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베르사유 궁전이 그러하며, 그런 건축물 안에 살던 교황이나 절대 군주의 권위 있는 모습에 알게 모르게 기여한 것도 좌우대칭형 의상이었다.

과거에는 정치 권력적인 이유로 대칭성을 강조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좌우대칭형 의상의 딱딱하고 격식에 맞춘 듯 불편해 보이는 인상을 완화하기 위해 장식을 덧붙이게 된다. 사진 ①에서도 소매와 목 부분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꽃 장식을 겹겹이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더했다. 하지만 주색을 검정과 하양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장식적이지만 굉장히 절제되어 보인다.

그에 비해 동양은 관계 중심적 사고를 한다. 이러한 사고는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며 상호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우리 조상들이 저고리의 깃, 섶, 동정이 빠진 옷을 눈, 코, 입 없는 옷이라고 표현하고 저고리와 치마 색을 맞출 때조차 하늘과 땅, 음과 양의 관계를 생각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와 ‘옷’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은 서양과는 다른 복식 미학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즉 옷이 인체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그 자체의 인격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②의 모델도 샤넬의 모델처럼 검정과 하얀색만으로 이루어진 의상을 입었다. 하얀 재킷과 스커트를 입고 까만 스타킹과 구두를 신은 모델은 그러나 샤넬의 모델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엄숙함 보다는 무언가 꿈틀대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재킷의 비대칭적인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복잡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다양한 색이나 특별한 장식 없이도 그 화려함, 활기참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비대칭성만으로 이렇게 재킷에서 기운 생동함이 느껴지긴 힘들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앞여밈 부분만 비대칭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재킷은 한번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된 형태이다. 재킷의 여러 군데에서 다른 재킷에서 나왔을 법한 어깨부분들이 연결된 것이 보인다. 그래서 매끈하게 떨어져야 할 가슴 부분이나, 어깨에 미묘한 곡면이 생기면서 일반적인 재킷에서는 느끼기 힘든 생명감이 드러난다.

또한 이렇게 비대칭적이며 미묘한 선이 살아있는 재킷과 매치한 치마는 좀 평범한가 싶더니 밑단의 올이 풀려있다. 상의의 비대칭성을 허리춤에서 조금 중화시켜 주면서 끝단을 풀어내 상의에서 느껴지던 생명감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겉감과 안감이 완벽하게 마감된 옷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느껴지지만, 이렇게 올이 풀린 마감 처리는 마치 그 옷을 만든 사람의 손길이나, 완성을 지향해 가는 미완성의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즉 샤넬의 옷을 입은 모델이 옷과 사람이 하나가 된 완벽함 그 자체로 보인다면, 꼼 데 갸르송의 의상을 입은 모델은 사람과 재킷과 치마가 어떠한 관계성을 갖고 있는 유기적인 형상으로 보인다. 흑?백 두 가지 색으로 옷을 만들었지만 두 디자이너의 결과적인 형태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 형태는 결국 어떤 개념을 가지고 옷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형태보다 개념
1980년대에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의 패션이 서구 패션계에 충격을 준 것도 그 때까지 그들의 눈에 익숙했던 대칭적 형태에서 벗어나 비대칭적이며 무규칙적이고, 기성복처럼 보이지 않는 의상 때문이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1980년대의 시각에서는 겉감과 안감의 완벽한 마감, 대칭형태에 익숙했던 파리의 패션계에 후줄근하고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이러한 옷들이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이 컬렉션으로 ‘거지 룩’, ‘넝마주의 룩’이라는 용어가 패션계에 생겼다.

표피적으로는 형태가 그들의 눈에 낯선 것이 이유였겠지만 그러한 형태가 나오게 된 밑에 깔린 개념도 생소했을 것이다.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의 콘셉은 ‘의도적인 빈곤의 미’였다. 성리학의 개념이 있는 동양에서는 스스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선비의 정신 이라는 개념이 있게 있기 마련이지만, 매 시즌마다 아무나 갖지 못하는 귀족들의 화려한 최고급의 옷을 선보이는 오뜨 꾸튀르에서 시작된 서양의 패션이 아무리 기성복 패션쇼를 하게 됐다지만 이렇게 의도적인 궁핍함, 빈곤함의 표현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지만 거기서 그쳤다면 가히 혁명적이었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이후로 그들은 비대칭적이며 나와 옷은 별개라는 개념을 연속타로 선보이며 일본 패션이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마침내 이세이 미야케가 1976년에 처음 소개했던 동양 복식의 개념인 하나의 천으로 된 옷을 발전시켜 주름진 의상을 선보였다. 기술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혁신적인 것이었다. 옷 한 벌을 완전히 재봉한 후 주름 기계에 넣는 것이었다. 폴리에스터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조직에 영향을 미쳐 그 특유의 생명감 있는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 주름진 의상은 1996년에야 지금은 잘 알려진 ‘플리츠 플리즈’로 완성된다.
더 이상 옷은 옷이 아니라 조각 작품으로까지 추대된다. 이세이 미야케까지 가세하면서 일본 패션은 주류 패션계에 안착한다.

사진 ⑤의 의상은 어떠한가. 아코디언 주름 방식으로 접힌 옷은 몸에 종속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보관방법을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이 동양의 복식 개념에서 발전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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