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사고로 행복한 옷을 짓는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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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⑳-레이 가와쿠보 2

2010-11-12 오후 5:26:08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풍요로운 우아함을 추구하던 시대, 신소재와 달로 쏘아올린 로켓으로 야기된 미래주의, 여성의 사회 진출로 강한 여성의 시대가 오고 더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을 무렵, 일본에서 온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는 서양의 패션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을 뒤흔드는 돌풍이었다.

현대 패션사에서 1980년대는 동양에서 온 일본 디자이너들에 핵폭탄을 맞은 시기로 표현된다. 물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화려한 기모노를 가지고 파리 패션계에 일본 패션의 씨를 심은 하나에 모리부터, 70년대에는 일본과 유럽을 왔다 갔다하며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시작한 다카다 겐조와 이세이 미야케, 이렇게 차근차근 선배들의 닦아 놓은 발판과 더불어 1980년대에 드디어 그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 레이 가와쿠보, 그리고 그녀와 함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요지 야마모토가 있었다.

레이와 요지
레이 가와쿠보는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 그리고 그 게이오 대학에서 일본어와 서양 예술을 공부했던 그녀는 졸업 이후 일본의 첫 번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자신이 원하는 옷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72년 스스로 회사를 세워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보다 1년 늦게 태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옷을 만들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요지 야마모토는 게이오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옷에 대한 것을 배운다. 후에 문화 복장학원에서 공부하여 공모전에서의 1등 부상으로 파리 여행 기회를 얻은 요지 야마모토는 8개월간 파리에 머물렀고 곧 돌아와 1971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게이오 대학과 문화 복장학원이 둘을 연결 시켜주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어느 정도 추종자가 생기고 기반을 잡은 두 디자이너는 1981년 파리에 진출하였고 그 당시 둘은 연인이었다. 그들은 해체적이고 비대칭적인 검은 옷으로 파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이 가와쿠보의 첫 컬렉션이 그랬다. 바지 발목 끝단에 스웨터 손목 부위가 가서 붙어있다든지, 오버 사이즈 코트에 단추의 오른쪽, 왼쪽이 바뀌어 있다던지, 스웨터의 목 부분이 가슴이나 어깨로 가 있다던지 하여 그것이 입혀진 몸은 뒤틀려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너무나 독특해서 흥미로웠고 별났으며 추상적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음악 없이 기차 소음 같은 소리만 크게 들리고, 모델들은 어둡고 배고픈 듯한 얼굴로 초점이 나간 채 조용하고 즐거움을 상실한 것처럼 걸었다. 패션쇼 이후에 언론의 평은 혼란스러워 하거나, 무시하거나 였다.

요지 야마모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진보적 일간지 리베라시옹에는 이런 타이틀이 실렸다. ‘프랑스 패션, 일본에서 스승을 찾다.’ 요지 야마모토의 컬렉션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되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옷들은 이후 20년간 우리에게 무한히 실현 가능하게 될 것이다. 1960년대 앙드레 꾸레쥬나 피에르 가르댕이 2000년대의 의상으로 제안했던, 지금은 너무 구식이 되어 소련의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옷들에 비해서 말이다.’ 

무엇이든 너무나 충격적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도 소수 있게 마련이다. 그녀와 요지 모두 다음 컬렉션에 초대받게 된 것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준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일본 색
당시 그들의 옷은 검은색이 특징이었다. 지금도 검은색은 여전히 레이 가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이나, 요지 야마모토를 상징하는 색이다. 사진 ①은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의 컬렉션에서 각각 한 장씩 뽑은 사진이다.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형식이다.

즉, 검은 의상, 빨간 신발, 비대칭적 구성, 일본의 요괴 같은 메이크 업이 그것이다. 지금에 봐도 낯선 이미지인데, 1980년대 동양에 대해 무지했을 서양인들의 충격은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물론 레이와 요지, 두 디자이너의 개성은 그래도 살아있다.

요지 야마모토가 서양의 복식을 재료로 비대칭과 확대로 기존의 옷을 변형 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면, 레이 가와쿠보도 서양의 복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어쨌거나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가와쿠보의 공로는 색만으로도 사람들이 일본의 감성을 느끼게 만든 점이다. 다시 말해, 검정과 더불어, 하양, 빨강의 조합만으로도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 저것은 일본이다’ 라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검정과 흰색은 무채색으로 명도차가 가장 극명하게 나는 색 조합이다. 따라서 두 색만 써도 그 강렬함의 세기가 강하며 색을 절제하였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렇게 ‘절제’라는 이미지는 초기에 서양의 언론이 두 디자이너에게 청교도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검정과 하양만으로 일본색이 강하게 묻어나지는 않는다.

위의 설명처럼 오히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레이 가와쿠보 보다 더 색을 절제하는 요지 야마모토에게 도인이라는 이미지가 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빨강색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일본색이 완성된다.

사진 ③-1에서는 일본 색이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얌전한 소녀가 깨끗한 하얀 원피스를 입었지만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검정 가죽 장식이 더해진 의상이다. 하지만, ③-2에서는 신발을 가리고 하얀 원피스에 하얀 가죽 장식을 하고, 검은색 벨트와 검은색 스타킹까지만 볼 때와, 빨간 신발까지 볼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③-3은 화려한 무늬까지 더해져 완연한 일본이 느껴지는 의상이다.

그런데, 하양과 검정은 샤넬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색상 조합 방식이었다. 샤넬의 의상에서도 그러한 종교적 색채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샤넬의 의상이 기독교적인 엄숙한 절제미가 느껴지는 의상이라면, 확실히 요지 야마모토나 레이 가와쿠보쪽은 장자의 영향을 받은 무위자연의 도가 계열이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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