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동안 소개했던 디자이너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이상하다면 이상하지만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서양의 디자이너들이었다. 딱 한번 여성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소개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열에 아홉은 남성 디자이너였다.
오늘 소개할 패션 디자이너는 처음으로 동양인이자, 여성인 패션 디자이너이다. 다분히 매니아적이면서 대중성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 ‘꼼 데 갸르송’의 설립자이자 단순히 패션 디자이너라고 설명하기에는 뭔가 죄송한 레이 가와쿠보다.
아예 새로운 기준
파리 컬렉션에서 진행되는 꼼 데 갸르송의 컬렉션을 보고 있노라면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행위예술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괴상망측한 옷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메이크업까지 더해져 모든 것이 뒤섞이고 혼돈인 4차원의 세계에서 막 3차원의 세계로 끌려 온 새로운 생명체 같다.
지구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새롭고 묘하다.
사실 무대장치나 조명, 음향 효과 등을 이용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 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단순히 레이 가와쿠보는 무대 연출력으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옷 자체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 깨달음을 야기한다.
따라서 그녀의 컬렉션을 보고 여느 컬렉션처럼 아름다웠다느니 세련됐다느니, 새 시즌에 트렌드가 되겠다느니와 같은 세속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다. 모델의 쭉 뻗은 각선미나 S라인 몸매를 감상하려는 태도는 더더욱 안 된다. 그녀의 옷에 대한 관점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도 완전히 새로워야 한다.
인체에 얽매이지 않은 실루엣
우선 형태부터 심상치 않다. 실루엣을 기존의 A라인이나, X라인, H라인, O라인 등으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울룩불룩한 것이 마치 꼽추 아니면 인체가 변형된 것 같다.
사진 ②를 살펴보자.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카키색 재킷과 검정 레깅스, 벨트 부분과 운동화는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 같다. 재킷은 몸에 잘 맞지 않아 뭔가 붕 뜬 것 같고, 가랑이가 드러나는 레깅스는 왠지 부끄럽다. 하지만 뭔가 벙벙한 재킷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재킷들의 어깨와 소매부분을 잘라내어 서로 연결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앞모습은 마치 양 어깨가 앞으로 쏠려 나와 있는 것 같다. 뒷모습에도 어딘가에서 잘려 나온 어깨가 붙어 있다.
새로운 형태와 실루엣에 대한 그녀의 고민의 결과일까. 원래 재킷이 아닌 외부로부터 침투해온 어깨들의 연결 때문에 가녀린 모델의 몸은 기괴한 실루엣으로 변했다. 심지어 빨간 벨트도 또 다른 가죽 재킷의 어깨 부분의 변형으로 보인다.
재킷의 어깨 부분은 일명 뽕이라 불리는 패드가 들어가 가장 인위적이며 각이 지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힘이 강하게 들어가는 재킷의 어깨 부분으로 마치 인체를 조각하듯 새롭게 재구성해 낸 점이 소름끼칠 정도다.
그녀의 옷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낯선 이미지에 공포감마저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신체가 훼손된 것에 대한 공포감일 지도 모른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그녀의 꼽추 스타일은 그 자체로 보기 흉했다. 하지만 앞에서 경고했듯이 그녀의 옷은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옷을 보듯이 보면 안 된다.
사진 ③의 의상은 지금까지 반전 의상과는 또 차원이 다르다. 여느 반전 의상이라 함은 앞모습은 단아한데 뒷모습은 홀딱 파여 있다거나, 앞과 뒤의 색이 다른 정도였는데, 이 의상은 앞에서는 H라인에 가까운 실루엣인데 옆모습은 굉장히 풍성한 A라인의 실루엣을 이루고 있다. 앞모습만 보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풍성함이다. 이런 실루엣을 구현해낸 솜씨도 놀랍지만 이런 생각을 해낸 레이 가와쿠보는 혹시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진 ④는 마치 몸 위에 옷을 입고 다시 피부로 한 겹을 더 감싼 느낌이다. 피부색과 거의 같은 망사 소재로 된 가장 겉 겹의 옷은 인체를 속박하며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옷 위에 겹쳐진 상태라 인체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신발 위에 그려진 발가락 모양은 몸, 옷, 다시 몸의 관계를 다시금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이렇듯 그녀의 옷에 대한 접근 시각은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아름답지도 않는 이런 옷을 디자인하는 것일까.
옷과 나
돌체 앤 가바나 편에서도 말했듯이 옷이란 인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제약이 많다고 했다. 우선은 입었을 때 편안하고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서양의 패션은 인간의 신체를 중심에 놓고 그것과 옷과의 관계를 설정하여 발전해 왔으며 그러한 편안함이 현재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옷이 될 수 있었던 근본 사고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양 출신인 레이 가와쿠보는 달랐다. 그녀의 접근 방식은 다분히 동양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옷과 나는 별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서양의 옷이 몸에 달라붙어 활동성을 확보하고 신체적 매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됐다면 동아시아의 옷은 우선 신체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 했다. 그래서 한복이나 기모노는 실루엣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다. 그것이 옷을 입은 사람이 조각 작품처럼 예술적으로 보이고 그 자체로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고의 근간이 된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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