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래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말했듯이 그녀는 정말 과거의 유산을 가지고 현대적으로 세련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데 천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복식사에 나올 법한 의상들을 지금 시대에 맞도록 고쳐내는 솜씨는 왜 그녀가 그토록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단순히 과거의 복식을 차용하여 현대적으로 바꾸기만 한다고 다 멋있고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과거 재해석에는 분명 남다른 비법이 숨어 있다.
펑크와 고전주의
그녀의 패션을 설명하는데 있어 펑크와 영국의 전통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 둘이 합쳐진 결과를 살펴보자. 회색의 단순해 보이는 드레스이다. 하지만 분명 세련되고 멋지다. 보통 드레스라면 성 안에서 곱게 보호받는 공주님이 입을 법한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어찌 보면 유치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는 그런 이미지인데 이 드레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위풍당당해 보이고 세련됐다. 어떻게 드레스가 예쁘기 보단 멋있어 보일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색에 있다. 그녀는 회색으로 드레스를 만듦으로써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미지를 드레스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약 드레스에 한 가지 색이라도 더 들어갔거나 무채색이 아닌 유채색을 썼다면-예를 들어 분홍색- 그 느낌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세련되기 보단 예의 평범한 드레스가 됐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색 하나로 이 드레스의 이미지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절제된 장식 또한 멋있어 보이는 드레스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드레스에 일반적으로 쓰는 레이스나 리본, 보석이나 진주 장식 등의 여성스럽고 화려해 보이는 장식을 쓰지 않고 풍선처럼 부풀어 볼륨감이 느껴지도록 목 주변과 소매, 치마끝단에 장식했다. 부가적인 장식물을 쓰지 않고 본래 드레스의 천 자체만으로 장식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 방법도 일반적인 한 겹으로 주름을 잡은 것이 아닌, 벌룬 형태로 볼륨감을 주었다.
게다가 치마단을 앞쪽은 짧고 뒤쪽은 길게 늘어지도록 비대칭으로 처리했다. 이러한 것 또한 이 드레스를 대칭적인 고전미보단 현대적이고 세련되고도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발가락이 보이는 토오픈 부츠도 작지만 큰 역할을 한다. 우선 드레스에 구두가 아닌 부츠를 매치한 것부터 고전적인 틀을 깬 것인데 거기에 발가락부분까지 파진 형태로 더욱 사회에 반항적이며 펑크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게 된다. 마냥 사회에 순응하는 고분고분한 여자가 아닌, 작은 부분에서도 난 내 주관이 있는 현대의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모델이 회색 드레스만 입었다면 오히려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재 묻은 신데렐라도 아니고 회색의 드레스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레스가 화려해 보일 수 있는 것은 적절히 사용된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의 효과가 크다.
드레스의 회색이 약간 푸른 기운이 도는 회색인 드레스인 만큼 청보라색을 선택함으로써 큼지막한 귀고리가 마냥 튀는 것이 아닌 적절히 옷과 조화로워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주황색의 머리 장식은 푸른 기운이 도는 회색과 보색인 동시에 보라색의 귀고리와는 빨간색의 공통 분모를 가진 약간 먼 인접색으로 전체적인 인상이 화려해 보이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렇듯 한 옷 안에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인 짜임새가 탄탄한 옷이 완성된 것이다. 이렇듯 그녀는 고전적인 요소를 사용하면서도 자신만의 공식으로 전통의 단순한 재사용이 아닌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샘, 전통 무늬
사진①이 형태적으로 고전과 현대의 조합이었다면 사진②는 무늬가 그렇다. 사진②는 발랄한 색상의 스트라이프의 상의에 마치 로코코 시대의 실크 벽지나 커튼에 들어있을 법한 무늬의 스커트를 매치하고 있다.
노랑에서 연한 푸른색까지의 색상으로 구성된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상큼하고 발랄해 보인다. 머리의 벼 이삭 같은 장식은 이 아가씨가 드넓은 초원에서 망아지처럼 뛰어놀 것 같은 이미지를 내비치지만 거기에 광택이 도는 브로케이드 스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가씨가 귀족 집안의 자제일 것 같은 이중적 인상을 준다.
그런데 만약 상의가 일반적인 피켓 셔츠같이 캐주얼 했다면 브로케이드의 치마와 이토록 잘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티셔츠의 목이 카울 네크라인으로 드레시한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에 상의와 치마가 겉돌지 않는다. 이러한 작은 부분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적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잘 느껴진다.
사진③은 바지 정장을 입은 현대적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그녀는 전통문양을 활용했다. 하지만 전통을 활용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많은 디자이너들도 전통 모티브를 디자인에 활용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제품을 보면 아, 전통 이미지를 차용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직접적이다. 즉, 색이나 문양을 너무 그대로 쓰기 때문에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통을 활용할 때는 머리를 잘 써야 한다. 어차피 현대와는 동떨어진 시대의 것이므로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특히 색이 그렇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전통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그녀가 색을 잘 쓰기 때문이다. 재킷과 바지에서 브로케이드의 무늬가 화려한 원단을 사용했다. 재킷의 경우에는 금사로 무늬를 넣어 빛에 대한 반사가 강하다. 하지만 보통 그럴 경우 재킷에만 시선이 갈 텐데 오히려 얼굴이나 모자가 더 튀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지의 명도가 굉장히 높아서 재킷의 금색만큼이나 밝기 때문이다. 만약 바지가 진한 색이었다면 명도 대비로 재킷은 더없이 밝게 빛나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금색만큼이나 밝은 바지의 노란색과 하늘색이, 너무 자잘해서 거의 푸른 회색처럼 보이는 블라우스의 잔무늬와도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의상이 튀는 부분 없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원색 같은 주황색의 모자에 더 시선이 강하게 가게 된다.
이렇듯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색을 노련하게 잘 조절하여 쓰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감을 얻기 위해 박물관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닌다고 한다. 그녀가 얼마나 전통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지, 그 고민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그녀의 옷에서 살펴봐야 할 것은 색 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옷의 진짜 매력은 파격적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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