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와 철저히 맞서온 ‘펑크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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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⑲

2010-07-09 오후 8:32:41



‘나나’라는 일본 만화책이 있다. 음악 밴드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이야기인 이 만화는 영화와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만화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람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잘 풀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디 밴드의 보컬이었던 나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스타일리시한 패션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스타일리시한 패션은 이 만화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디자이너의 실제 옷을 참고하여 그린 것이었다. 그 디자이너가 바로 펑크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만화 속 주인공이 입고 나온 옷이 실제 현실에 있는 옷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 디자이너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도가 증폭되는데, 만화 속 나나의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아니 만화보다 더 파격적인 삶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살고 있다. 두 번의 이혼과 26살이나 어린 제자이자 세 번째 남편과의 반라의 화보 촬영, 영국을 빛낸 여성 디자이너로써 훈장을 받으려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러 간 자리에 속이 비치는 옷을 입고도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아 상상하기도 민망한 차림의 사진이 온 신문에 도배되기도 했었다. 또 본인 스스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분장하여 만든 광고 사진 등 이 붉은 머리의 창백한 피부를 가진 이 디자이너는 벌써 70세 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매력적인 컬렉션을 진행하며 에너지 넘치게 활발히 활동 하고 있다.

21세기 해적의 보물 창고
‘나나’의 제2의 주인공이었던 패션 스타일은 사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타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타탄체크에 마치 구겨진 휴지같이 복잡하고도 자유분방하게 드레이퍼리(자연스러운 주름) 진 그녀 특유의 의상들, 옛날 귀족들이 입었을 것 같은 고전적인 의상과 펑크적인 요소가 혼합 된 옷, 전 세계의 민속 복식을 이리저리 섞은 듯한 옷 등은 마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보물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옷으로 풀어내는 21세기형 해적 같다. 그런 그녀의 옷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양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특징 중에서도 가장 먼저 꼽을 것은 그녀의 옷이 굉장히 영국적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영국적 이미지가 강한 소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사진 2에서는 영국식 경찰모자, 귀족적 이미지가 강한 흰 장갑, 기숙학교 학생들의 것 같은 옥스퍼드화와 체크무늬 스커트를 한 데 그러모아 한 룩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를 단순히 사용한다고 잘 어울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모델한테 모자 하나 덧씌운다고 룩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닌데, 그녀는 한 룩 안에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을 넣었음에도 하나의 독립적 이미지로 결합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패턴의 변화는 그녀의 두 번째 큰 특징이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하게 주름 잡힌 옷도 아름답지만 기존의 칼라의 크기 확대나 모양 변화, 앞섶이 풀어헤쳐진 모양의 블라우스라던지, 블라우스를 끌어올려 마치 은행 강도단처럼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로 변형시키는 등, 볼수록 기발하고 재미있는 디자인들이 넘쳐난다. 지난 시간의 마크 제이콥스가 여러 번 컬렉션을 보다가 숨어있던 작은 변화들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전면에 그러한 변화들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비비안 웨스트우드하면 펑크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권위적인 사회에 대한 반항적 이미지,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 금기시 되는 성에 대한 드러냄 등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작년엔 부담스러운 가슴을 가진 배우 파멜라 앤더슨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무대에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포르노, 동성연애자, 드랙퀸, 파괴되고 해체된 의상, 염색 된 머리 등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일 수 있다. 특히나 현실이 아닌 패션쇼에서는 이미 그러한 이미지들조차 만연하게 되어 더욱 감각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을 찾고 환호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지로만 남은 그러한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 사회에 대한 소수의 현실이자 괴로움이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동성연애자라는 단어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나. 그러한 의미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높이 평가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막 옷을 시작했던 상황은 정말 암울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는 것의 폭력성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패션 기사에서 논하기에 너무 무거운 주제 인가.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과 투쟁의 결과이다.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는 기존 세대에 대한 불만을 갖는다.

학교에서 배운 정의와 도덕은 사회에 나오면 한낱 종이에 써있는 뜬구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는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와 다른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본다.

1941년의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한참 20대를 보내고 있던 1968년 드디어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학생과 근로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기성세대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수법, 불합리한 시험 제도, 불안정한 고용제도,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어디서 많이 보는 사회문제들 같다) 등의 억압에 대한 투쟁이었다. 68혁명이라 불리던 이 작지만 큰 움직임은 세계 젊은이들을 자극했고 주요 도시들로 번져나갔다.

프랑스 옆에 있는 영국에서도 당연히 사회 모순에 대한 반항의 기운이 꿈틀거렸을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지금까지도 여왕과 귀족들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경직되고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저 사회에 순응해서 자신이 속한 계급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을까.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으로 그런 사회의 금기들을 깨기 시작했다. 40여년을 패션계에 몸담아 오면서 그녀가 운영했던 작은 부티크들의 이름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사회에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Let it Rock(1973)’, ‘T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1974)’, 'Sex(1975)’, ‘Seditionaries(선동자들)’, ‘World End’ 등 극단적 상호들을 사용하였고, 이름으로만이 아니라 옷으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극 표현해 나갔다.

그녀가 권위적이고 신사들의 나라인 영국에서 얼마나 따가운 시선에서 힘겹게 부티크를 운영해 갔을지 감히 상상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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