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제이콥스의 옷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 ‘이게 뭐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면이 공존한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뉴욕에서 컬렉션을 진행하기 때문일까. 지난 주 살펴본 의상들은 대부분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옷이었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가 매장에서 옷을 사서 바로 입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현실성이 강하다면 파리 컬렉션의 ‘루이 비통’은 좀 더 실험성이 강하다.
다양한 무늬를 혼용해 쓰는 기본 공식은 같지만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 지난 시간에 잠시 언급했듯이 패턴의 작은 변화는 큰 감동을 선사하고 패턴의 큰 변화는 실루엣의 변화를 초래한다.
미묘한 실루엣
루이 비통의 2010년 봄/여름 컬렉션의 의상들이 그랬다. 사진 1에서 보여 지는 재킷과 망토를 합한 듯한 상의로 어깨를 둥글게 감싸는 실루엣이 만들어졌고, 바지 또한 독특한 절개와 겹겹이 겹치는 천들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더욱 둥글게 감아 내려온다.
그의 옷은 고전적인 특징과 거리가 멀다. 마냥 우아하고 아름답지 않다. 특히 실루엣 부분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뭔가 쾌하게 딱 떨어지는 실루엣이 아니다. 심지어 50년대 여성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던 올 가을 컬렉션에서조차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또 다른 보기 불편한 미감이 섞여 있다.
전형적인 실루엣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면 A, X, H, O라인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X라인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실루엣으로 서양복식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여성복 중 비중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실루엣이며, 따라서 일종의 고전적인 인상을 준다. 이 X라인의 조형적 특징은 허리를 조임으로써 가슴과 엉덩이는 볼륨감이 느껴지며 허리는 더욱 가늘어 보이는 것이다. 또한 미학적 쾌감을 주기 위해서는 가슴, 허리, 엉덩이의 황금 비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 X라인은 사실 여성의 신체를 많이 억압한다. 하루라도 허리를 꽉 조이는 옷을 입어본 여성이라면 알 것이다. 하루 종일 배에 힘을 주고 다니는 고통을. 속으로는 가스가 차고 겉으로는 남의 시선 의식하느라 한시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고통을. 아름다움을 위해 신체의 편안함은 포기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불편하다.
어쨌거나 마크 제이콥스도 허리를 강조하여 벨트를 같이 매치 하는 스타일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의 컬렉션을 보면 뭔가 고전적인 느낌보다는 어딘가 불명확하고 품이 벙벙해 보이고 한 눈에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에서도 허리를 조이는 X라인 실루엣을 많이 사용하지만 결코 진부한 X라인이 나오는 법이 없다.
이렇듯 그의 시각적 불완전함, 불편함을 즐기는 성향을 미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그는 분명 낭만주의자다. 고전주의는 분명하고 명확한 미를 추구하는데 비해 낭만주의는 그런 고전주의에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인용해 보자면 ‘고전주의자는 예술에 ‘추’를 그리는 걸 일절 허락하지 않았지만, 낭만주의자는 오히려 허울 좋은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추함’을 폭로하는 걸 즐겼다.‘ 라고 했다. 우리가 컬렉션을 보면서 마냥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생각되는 랑방이나 발렌티노 등의 의상이 완벽한 비율과 색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주의적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면 불완전함을 즐기고 개성을 중시하는 마크 제이콥스의 성향은 분명히 낭만주의자로 규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형태와 색을 무시하는 디자이너란 뜻은 아니다. 그 또한 옷의 전체적인 비레를 굉장히 신경 쓰는 디자이너다. 다만 그 비례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비례에서 약간 벗어난, 개인적인 기준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비례라는 데서 그의 개성이 살아난다.
알고보면 낭만주의자?
미학 얘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서양사를 간략하게 미학적 관점에 따른 시대로 분류해 보자면 그리스 시대에는 '미‘라는 범주가 우세했던 시기이고 중세 예술은 철두철미하게 ‘숭고’의 예술을 지향하며 희극성, 즉 웃음을 허락하지 않았고 천상의 ‘미’와 지상의 ‘추’를 대비 시켰던 시대다. 고전주의는 분명하고 명확한 미를 추구했으며 바로크 시대에는 ‘극적인’ 묘사를, 로코코 시대에는 ‘우미’의 예술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에 비해 낭만주의는 18세기 말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이루었던 질서, 냉정, 조화, 균형, 이상화, 합리성 등에 대한 거부로 이해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계몽주의와 18세기의 합리주의 및 유물론 일반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낭만주의는 개성, 주관, 비합리성, 상상력, 개인, 자연스러움, 감성, 환상, 초월성 등을 강조했다.
그러한 시각에서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을 살펴보자. 특히 올해 ‘루이 비통’과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이 그토록 기이한 인상을 준 것은 고전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는 그의 디자인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옷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클리셰를 의도적으로 진부해 보이지 않도록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각으로 변형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크 제이콥스의 옷에는 그러한 특징을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유럽이 아닌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에게 세계4대 컬렉션을 꼽으라면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것이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이 도시의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의 세 도시가 유럽에 속해 있다면 뉴욕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뉴욕이 세계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도시 중 하나지만 미국의 역사는 유럽에 비하면 굉장히 짧고, 따라서 전통문화의 혜택이 적을 수밖에 없다. 옷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전통문화와 삶이 좀 더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유럽 디자이너들에 비해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개성을 드러내는데 걸림돌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같은 뉴욕의 디자이너라도 랄프 로렌은 미국의 전통복식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유럽의 귀족문화를 동경하면서 그 둘을 접목시킨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다. 같은 문화적 배경에서도 마크 제이콥스와 랄프 로렌은 옷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차이에서 그 길이 갈라졌다고 볼 수 있다.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로 발탁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고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디자이너들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새로운 개성을 덧입힐 수 있는 능력을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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