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있는 색의 가짓수는 무한하다. 하지만 색의 종류는 가시광선 안에서 유한하다. 무한하면서도 유한한 색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색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색상’, ‘채도’, ‘명도’이다.
빛의 파장과 색
본다는 것은 사물이 튕겨내는 빛의 파장을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빛의 파장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로 우리의 눈동자를 파고들어온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존속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현실의 연속적인 상은 이렇게 찰나고이루는 파장들이 끊임없이 겹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빛의 파장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색은 이러한 빛의 파장에 얹혀서 눈 안으로 들어오는 시각적 자극의 일부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사물의 윤곽인 형태는 빛의 파장이 사물에 부딪혀 튕겨져 나오는 각도와 관계하기 때문에 눈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제나 일정하다.
하지만 색은 파장의 모양과 관계가 있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파장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가진다. 예를 들어 같은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하더라도 전원의 주파수, 형광물질이 반응하는 리듬 등에 따라서 순간순간 모두 다른 모양의 파장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빛의 파장이 눈에 도달할 때까지 거치게 되는 공기의 상태 역시 매순간 다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빛의 파장은 설사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다른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색은 항상 같지가 않다. 우리가 하나의 색을 응시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매순간 다른 색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색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로 다른 색을 보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색은 거의 무한할 정도로 많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그렇지만 무한에 이를 정도로 많게 되면 정리가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가 없어진다.
색의 위계질서 세우기
디자인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무한한 색의 세계는 오히려 체험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무한하기 때문에 나쁠 것이 없다. 눈에 들어오는 색의 파장들이 좋은 조화를 이루면 미적 쾌감을 즐기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외면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해서든 미적 쾌감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색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히 흩어져 있는 색들을 디자이너의 손아귀 속에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관리가 안 되면 내 마음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색을 관리해서 좋은 디자인을 만들려면 우선 수십만 권의 책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처럼 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한다. 일단 자료가 정리되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많은 색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까?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책을 서열화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준이 먼저 확보되어 있으면 수천 권이든 수만 권이든 책의 양에 관계없이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색도 마찬가지다. 셀 수 없이 많은 색이 있지만 이 색들을 구분하고 서열화할 수 있는 기준만 확보된다면 디자이너들은 손쉽게 색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색에 대한 접근은 색 그 자체보다는 색을 분류하는 체계에 먼저 입각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색을 구분하는 기준, 색상과 채도와 명도
우리 눈에 들어오는 색의 가짓수는 무한에 이르지만 그 종류는 한계가 있으니 여기서 색의 무한함을 유한하게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색을 본다고 할지라도 그 범위는 일단 가시광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즉, ‘빨주노초파남보’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색이란 것이 두서가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가시광선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색의 활동반경을 우선 제한할 수가 있다.
그 안에서 색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색상이다. 음악에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있는 것처럼 색에는 빨강에서부터 보라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색이 있다. 이것이 색상이다.
세상의 수많은 색들은 빨간색에 속하는 색, 노란색에 속하는 색 등 색상을 중심으로 먼저 구획하고 정리할 수가 있다. 일단 그렇게 구획되고 난 후에 샛노란 색이라든지 개나리색 등과 같이 그 다음 단계에서 또다시 색을 구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색상들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어떤 색들은 서로 친하고 어떤 색들은 서로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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