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아가씨가 한 청년과 선을 봤다. 여인은 기자가 직업이라는 그 청년의 날카롭고 차가운 첫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차 한 잔만 급히 마시고 헤어졌다. 그러다 어찌어찌 저녁을 함께 하는 두 번째 만남이 이뤄졌다.
어두컴컴한 다방에서 상체만 마주보고 앉아 있다가 희미한 전봇대 밑에 서 있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자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침 겨울이라 그가 입은 두꺼운 오버코트는 땅에 닿을 정도였고 품은 너무 커서 옷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편안해진 마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아가씨는 마침내 마음을 열었다. 그 후 그들은 결혼을 했다.
당시 그 총각이 우스꽝스러워 보인 것은 그럴만한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 이들은 미니가 크게 유행을 하던 1968년에 첫 만남을 가진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 베이비 붐 세대들이 엮어내는 젊은이의 문화는 유행에서도 여러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미니의 유행이다.
Mary Quant라는 젊은 영국의 디자이너가 가위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것이었다. 그녀는 보수성이 강한 영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낡은 관습을 부정하고, 옷의 본질을 파악한 후 자유분방한 디자인을 했고, 이런 시도는 전세계 젊은이들을 매료 시켰다. 그 무렵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의 해외 토픽난에도 어김없이 나라 밖의 미니에 관한 기사가 빠지지 않고 실렸다. 그것들을 읽으며 한결같이 말했다. “이렇게 짧은 미니 스커트는 종아리가 날씬한 서양 여인들에게나 어울리지 어디 우리 조선 무우 다리에 가당키나 하겠냐”고.
드디어 이 땅에도 미니 스커트가 도착했다. 1967년 가수 윤복희가 문제의 미니 스커트를 입고 브라운관이 좁을세라 춤추며 노래했다. 그녀의 다리는 아름다웠다. 모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땅에서도 미니의 바람은 거셌고 모든 여자들은 너도 나도 미니를 입게 됐다. 또 스커트를 입지 않는 남자들은 두꺼운 오버코트 대신 무릎 위로 짧아진 가벼운 버버리코트가 유행이었다.
그런데 그 날 그 청년은 치렁치렁한 오버코트를 입고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아가씨는 바로 그 모습에서 총각의 소탈함을 보았으니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찌 됐던 그 옷이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로 그 주인공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옷에 얽힌 삶의 이야기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천사처럼 차려 입은 아가씨, 귀공자 차림의 총각 등은 시대를 초월하여 어떤 로맨스에서도 빠지지 않는 소설의 일부다. 옷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삶의 중심에서 인생을 바꾸어 놓은 옷의 위력을 빛 바랜 미니 스커트의 유행 속에서 엮어진 한 토막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1960년대의 미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짧아진 2010년대의 미니 속에서 오늘의 젊은이들은 어떤 인연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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