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에서 노련한 거장으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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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⑭

2010-06-04 오후 5:51:15


앙팡 테리블로 등장했던 장 폴 고티에도 어느새 프랑스 패션 디자인 전체를 이끄는 큰 형님이 되었다. 흐르는 세월에 따라 이 세기의 악동도 지금은 노련하고 세련된 거장으로서의 풍모를 하고 있는데, 과연 극도의 파격미를 선보이던 디자이너가 세월이 흘렀다고 이렇게 쉽게 얌전해 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혹 장 폴 고티에를 바라보던 우리의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인간 ‘장 폴 고티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장 폴 고티에를 등한시 했던 것 같다. 금성에서 왔을 것 같은 장 폴 고티에는 1952년 아르쾨유라는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태어났다. 그는 70년대 초, 그러니까 10대 후반에 벌써 패션 계에 입문하여 피에르 가르뎅과 장 파투에게서 실무를 배웠다. 보기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패션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던 것이다. 1976년에 들어와 첫 컬렉션을 열었는데, 이때부터 악동적 기질이 발휘되었는지 악평을 받았다고 한다.


1979년에 이르러서야 컬렉션을 통해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남성용 스커트나 아웃웨어 위에 이너웨어 입기, 타투가 프린트 된 바디 스타킹, 트렌치 코트와 르 스모킹(여성용 바지 정장), 스트라이프 셔츠 등 특유의 파격적인 옷들을 선보이면서 파리지엔 룩을 변모시켰다.


이처럼 기존의 옷을 완전히 해체하여 재해석한 그의 옷들은 단박에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했고, 그의 패션에는 항상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런 파격적이고 초현실적인 성격은 패션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많이 각광받았다.


‘제 5원소’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등 그는 초현실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영화에 참여하여 인상적인 영화 의상을 많이 디자인했었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에 참여하면서도 장 폴 고티에는 패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앉아 여전히 오뜨 꾸튀르를 진행하는 몇 안 되는 프랑스 디자이너 중 한 명이며, 자신의 이름의 기성복 라인과 주니어 라인, 향수사업, 2004년부터 에르메스의 디자인을 총 책임지고 있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앙팡 테리블, 무서운 아이라 불리던 이 톡톡 튀던 디자이너는 어느 새 60을 바라보는 노련한 거장이 되었다. 30여 년간 부침이 심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전쟁터인 파리 한복판에서, 자칫 세월의 흐름에 식상해지기 쉬운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패션으로, 자신의 이름을 꾸준히 패션계의 중심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렇게 되었던 그의 저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해체된 형상 아래의 고전적 인상
파격적인 디자인일수록 시간의 흐름에 살아남기 힘들다. 새로움의 파괴력은 시간이 지날 수록 휘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당장은 파격적인 것이 좋은 것 같아도 길게 보면 그리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어려운 것이다. 장 폴 고티에는 그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파리 한복판에서 거의 영생을 얻은 것처럼 장수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한데, 그 이유는 맨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실마리는 그의 디자인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있다.


파격적인 인상 때문에 항상 가려서 잘 안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그의 이런 디자인 뒤에는 항상 고전주의가 깔려 있다.


그림④는 정장이라는 가장 딱딱하고 업무적인 성격이 강한 옷 안에 몸에 달라붙는 수영복 또는 속옷같이 생긴 옷을 입고 있다. 옷의 전체적인 구조나 좌우 비대칭적인 옷의 구조, 강조된 어깨의 모양들이 초현실적이면서도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인상 때문에 장 폴 고티에의 패션은 항상 파격적이라는 불명예(?)를 달고 다녔는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바로 그런 옷의 매치 안에는 고전주의적인 옷의 구조를 깔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적인 옷의 구조가 깊숙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의 옷이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하더라도 격조를 버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파격적이면서도 오래도록 패션의 중심지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 서양복의 가장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재킷을 같이 매치함으로써 아무리 튀는 형태가 와도 고상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콘 브라도 그렇다. 비록 옷의 구조나 재질은 파격적이지만 옷의 전체적인 구성은 여전히 서양의 고전주의 패션을 깔고 있다. 마돈나의 파격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시류에 급히 사라졌을 만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패션의 전설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그러한 파격적 이미지 아래에 고전주의적인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뺄 수 없는 것이 장 폴 고티에의 색이다.


치고 빠지는 균형감
파격적인 그의 의상들을 안정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는 색이다. 그의 패션은 파격적인 형태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색상은 튀지 않는 정도를 줄곧 지키고 있다. 눈을 자극하지만 않을 뿐이지 색의 어울림은 정말 거장의 솜씨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장 폴 고티에의 색의 경향이 튀는 형태와 아주 잘 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형태를 강하게 가져가는 대신에 색은 형태 뒤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그러니까 클래식한 옷의 구조와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두드러지는 색은 그런데 이 형태가 아무리 튀더라도 그 수위를 조절해 주는 것이 색이다.


중층적 매력
많은 사람들은 장 폴 고티에의 패션을 파격적이다, 해체적이다라고만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한 디자인이 그렇게 세계적인 주목을 끌 때는 어느 하나의 특징만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폴 고티에의 패션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큰 역할을 하는 배후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앙팡 테리블한 면모 뒤에는 디자인의 균형을 위해 철저하게 색을 절제하고 이미지를 조율하는 입체적인 노력이 중층적으로 배려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가 보아야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숨은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장 폴 고티에를 진정 파악하고 그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존속하게 만드는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그의 모습이 라기 보다는 숨어있는 아폴로적 근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고티에는 영리하고 지극히 논리적이라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현명함이 있었기에 유망주에서 그치지 않고 대부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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