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원이 바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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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옷의 어울림 완벽하게 조율

2010-05-31 오전 10:43:06

옷이 뭐 길래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일까. 무대 위의 멋진 옷을 보면서 환상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고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서 오는 기쁨도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기발한 형태, 독특한 이미지 등 탈일상적인 모습에서 오는 쾌감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나와의 어울림, 신체적 특징이라든지 얼굴색과의 조화 등을 가장 최신형의 컴퓨터 기종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해 내 싱크로율이 100% 맞았을 때의 쾌감이랄 수 있다.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여자에게 옷을 볼 때 후자의 기준은 아주 중요하다. 머리카락 색과 옷과의 관계 장 폴 고티에(1952~)는 갈색을 잘 쓴다. 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갈색의 톤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그 갈색이 서양인의 머리색과의 연관성을 고려한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사진①은 온 몸을 갈색으로 덮은 모델이 보인다. 갈색 중에서도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이 주 색이다. 모델의 붉은 갈색 머리카락과 재킷의 모피와 가죽 색이 마치 하나 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머리카락 색과 옷의 색이 같기 때문에 이 의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 이 옷의 화룡점정은 스카프의 노란색 선과 약간의 연보라색이다. 스카프 부분을 살짝 가리고 보면 이 옷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알 수 있다. 모두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야 하는 포스터를 그리려면 색을 3~4개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고. 옷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색을 쓴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면적 안에서 효과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색이 많으면 시선이 분산되며 집중성이 떨어진다. 사람은 크게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이라는 두 가지 색으로 인식이 된다. 거기에 옷을 하나 입으면 한 가지 색이 추가되어 이미 3 가지 색을 들어가는 것이고 거기에 포인트를 주기위해 한 가지 색을 더 추가하면 벌써 4가지 색을 쓰게 되는 것이다. 즉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볼 때 3~4개의 색이 들어가 있으면 옷 자체로 예뻐 보이더라도 사람이 입었을 때는 그 사람의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까지 포함이 되므로 총 5~6개의 색으로 된 조형물로 인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 폴 고티에가 머리카락 색과 같은 색의 의상을 입히면 그 줄어든 한 가지 색 만큼 더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진①은 모델의 피부색과 전체적인 붉은 갈색, 그리고 집중성을 부여하는 노란색 선과 그 노란색을 더 돋보이도록 조용히 내조해 주는 연보라색으로 구성됐다. 이 의상이 전체적으로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돌면서도 풍부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알게 모르게 3원색에 검정과 흰색, 즉 5방색이 다 들어갔기 때문이다. 붉은 갈색을 만드는 빨강과 검정, 노랑, 연보라색을 구성하는 파랑과 흰색. 이번에도 가죽 옷이다. 이번 갈색은 좀 오묘한 색이다. 갈색은 갈색인데 회색 같기도 하고 어쩐지 푸른 기운도 감돈다. 연보라색이 좀 더 탁해졌을 때 만들어지는 갈색이다. 금발의 모델에게 이 옷을 입혔다. 이번에도 총 4가지 색이 들어갔다. 하의를 구성하는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 재킷을 구성하는 오묘한 갈색, 모델의 얼굴과 머리카락 색. 정말 단조로울 것 같은데도 모델이 빛나 보이는 것은 결코 얼굴이 아름답거나 비싼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그녀와 어울리는 색의 의상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피부색과 옷과의 관계 세 번째(사진 ③)로 연한 회색의 옷을 입은 모델의 모습이 우아해 보인다. 이번에는 어떤 색의 비밀을 숨겨놓은 것일까. 의상은 전체적으로 회색 톤이고 옅은 분홍색의 피부를 가진 검은 머리카락을 한 모델에게 하얀색의 구두와 가방을 매치했다. 즉 흰색, 회색, 검정색의 무채색들이 의상을 이루고 있고 따라서 그에 비해 모델의 연한 분홍색의 피부가 더 화사해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상의가 그냥 회색이 아니라 회색에 가까운 연보라색이다. 따라서 무채색 의상과 모델의 피부색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연보라와 연분홍의 인접 색의 관계가 생기게 된다. 만약 이 옷을 동양인이 입었다면 어땠을까. 노란 기운이 도는 동양 모델이 이 의상을 입었다면 상의의 연보라색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노랑과 연보라색의 보색 대비가 더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고띠에 특유의 강렬한 옷을 입은 모델(사진 ④)이다. 전체적으로 마치 인형옷처럼 번쩍번쩍하고 쌩한 분홍색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과연 저 분홍색이 형광색인가? 어깨에 두른 모피 숄은 채도가 낮은 분홍색이다. 가장 안쪽에 입은 수영복은 분명 광택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연한 분홍색이다. 그렇다면 레이스 같은 원피스가 형광색인가? 그것도 아니다. 단지 그녀의 허리와 팔에 있는 듯 없는 듯 매치되어 있는 저채도의 분홍색 니트가 대비되면서 원피스를 더욱 빛나 보이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발을 살짝 가리기만 해도 원피스의 분홍색은 강렬함이 확 줄어든다. 신발의 광택 있는 리본까지 옷이 더욱 화려해 보이도록 착각하도록 돕고 있다. 평범한 분홍색들인데도 미묘하게 명도와 채도가 차이를 주면서 매치하여 이렇게 화려해 보이는 옷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그것이 모델의 짙은 피부색과 어울려 그 효과가 더욱 배가된다. 이번에도 분명 고띠에는 모델의 피부색을 고려하여 옷을 입혔을 것이다. 인도인 모델은 흑인과는 다른 까무잡잡한 피부에 형광색같이 강렬하게 눈을 파고드는 분홍색의 매치는 마치 인도의 사리를 연상하게도 한다. 이처럼 고띠에는 옷과 그 옷을 입는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할 줄 아는 디자이너이다. 사람들은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이 형태에서 오는 충격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는 색도 잘 쓴다. 그 옷의 색이 형태와 맞물려 너무 잘 조화 되서 인지가 안 될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옷을 입은 모델과의 소름끼치도록 잘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능력은 왜 그가 수십 년 간 패션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지의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 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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