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넥타이 집착증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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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오전 10:42:46

인간이 목에 무엇인가를 두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Kerr 와 Lester에 따르면 고대 원시인들은 전리품을 몸에 지니기 위하여 끈이 필요했고, 그것을 목이나 허리에 두르게 되었다고 한다. 목에 감던 물건은 네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발생 순서로 목걸이, 칼라, 머플러 형의 목 장식 그리고 넥타이라고 할 수 있다. 넥타이(necktie, cravat)의 기원은 17세기의 cravte(佛)라 할 수 있다. 루이 14세 시대에 있었던 30년 전쟁(1618∽1648년) 당시 연합군으로 파리에 온 크로아티아 기병대들이 목에 부드럽고 색이 있는 천을 둘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크라바트라 하여 프랑스 상류 사회에 등장한 것은 1650년이고, 1660년경부터 일반화하기 시작하였다. 크라바트의 유행은 묶는 방법, 크기, 모양 등이 변화하면서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steinkerk는 1692년 8월(루이 14세 시기)에 스타인커어크 전투에서 새벽 공격에 놀란 프랑스 병사들이 급히 크라바트를 묶느라 끝이 꼬인 것을 그대로 코트의 윗쪽 단추 구멍 속으로 꿰어 넣었는데, 승리 후 전투에서 우연히 생겨난 이 크라바트의 착용 방법을 ‘스타인커어크’라고 하였다 한다. 루이 15세 때(1715∼1774년) 에 들어와 넓은 밴드로 된 목장식인 stock이 등장하면서 이상과 크라바트 유행에 변화가 온다. stock은 린넨이나 cambric으로 주름을 잡든지 풀을 빳빳이 먹여 만든 밴드로 목에 두르고 위에서 고정시킨다.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군대의 검은 스톡이 멋쟁이 신사들에게 유행하였고, 1820년에는 정장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을 앞에서 묶을 때에는 나비 모양으로 묶어 너풀거리던 크라바트가 단순화된 첫 시도로 생각된다. 넥타이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은 1830년경으로서, 크라바트 대신 영국에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 크라바트의 형태를 답습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폭이나 소재를 사용한 넓은 끈 형태의 넥크웨어의 형태로 변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1890년에는 더비 타이(derby tei) 또는 four in hand라는 명칭도 나타났다. four-in-hand는 오늘날의 남자용 긴 타이를 말한다. 이런 명칭으로 불리운 것은 길이가 매듭에서부터 손 폭의 네 배 길이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넥타이는 사람의 얼굴 바로 밑, 그리고 앞 중심에 있으므로 타인에게 주는 상징성이 매우 강하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군대, 클럽 등 집단을 상징하는 표지이기도 했다. 또한 남성의 겉옷이 보수적인 데 비해 이 작은 조각은 독자적인 존재감을 어필하거나 컬러감을 과시하는 액세서리로서의 기능을 하였으니 보수적이고 단순한 남성복에서 개성이나 이미지 그리고 패션 감각까지를 표현하는 남성들에게 멋내기의 포인트가 되었다. 더구나 넥타이는 여성들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가장 많이 하는 선물의 하나이고 보니 이것을 맬 때의 감미로움이나 기쁨 그리고 매고 있는 동안 그 채취로 순간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복합적인 이유들과 특별한 대안이 없는 남성 패션의 보수성까지 합해지면서 오랫동안 수트나 재킷 안에서 셔츠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넥타이는 남성의 복장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빠질 수 없는 중심이 되었다. 하여 세계의 남성들이 정장에 넥타이를 꼭 매는 것이다.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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