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갈리아노의 패션에 담겨있는 숨겨진 원리들에 대해서 살펴봤다. 그의 옷이 화려하게 눈에 파고들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저 ‘타고난 감각’으로 ‘정적인 스타일링’이나 ‘감성적으로 색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밑에는 확실히 계산 된 디자인적 수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의 옷은 무대 위의 그를 닮았다. 누구보다 멋져보여야 하는 주인공처럼 내가 아닌 제 3의 인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숨김없이 당당하게, 능청스럽게 그 특징들을 드러낸다.
의도된 색
그가 애용하는 배색 방법 중 하나인 주황과 노란색의 조합만 해도 그렇다. 이 두 색은 정말 갈리아노를 닮았다. 밝고 당당하고 천진하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한다. 색의 사용에 부끄러움이나 내숭 따윈 없다. 사실 주황과 노랑처럼 인접색의 사용은 양면성을 갖는다. 무난하고 안정적인 색 조합방법이기도 하지만 까딱 잘못 사용하면 촌스러움으로 가는 직행 코스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인접색을 쓰지만 결코 촌스러워지는 법이 없다. 아주 미묘하게 색을 다루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명도를 조절했다. 위의 옷을 그냥 색상으로 인식할 때 주황과 노랑 중에 노랑이 명도가 높다. 하지만 위의 옷을 흑백으로 변환해보면 주황과 노랑색의 명도가 거의 같다.
그 말은 거의 원색에 가까워 보이는 두 색이지만 노란색의 명도가 아주 약간 낮아지면서 약간의 초록끼를 머금게 된 것이다. 노란색이 어두워지면 점점 올리브 그린색으로 변하게 된다. 어쨌거나 노란색이 약간 어두워지면서 초록의 향기를 미약하게나마 내뿜게 되고 주황색과 약간의 간격을 벌리게 된다. 정말 미세하지만 그러한 색의 사용이 인접색이지만 촌스럽지 않으면서 좀 더 화려한 느낌을 주게 만들어 준 것이다.
타오르는 듯 빨간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델이 강렬하게 런웨이를 걸어나오고 있다. 색 중에서도 빨간색은 가장 눈에 강렬하게 파고드는 색이다. 게다가 까무잡잡하게 갈색으로 태닝된 모델의 피부색은 원색인 빨강과 채도대비가 일어나면서 더욱 옷이 번쩍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그것뿐이 아니다. 쉬폰 소재로 속이 비치는 원피스 안쪽에 하얀색의 리본이 붉은 원피스 사이로 명도대비를 일으키며 발광하듯 비져나오고 있다. 여느 디자이너같으면 단순히 빨간색으로 튀어보이게 하는 원피스였을 테지만 갈리아노는 그 안에 여러 단계를 거쳐 빨간색이 더욱 화려해지도록 술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색만으로도 화려한 인상을 만드는 것은 사실 가장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방식이다. 이번에는 소재의 질감으로 사용하여 멋진 디자인이 나온 경우를 살펴보자.
대비시키는 재료
트렌치코트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벌쯤은 가지고 있으면 정말 유용하게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봄, 가을 간절기에 회사원들에게 격식 있는 자리나 격식 차릴 일 없는 자리에서나 옷 잘못 입어서 눈치 볼일 없을 전천후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트렌치코트 같은 전형적 이미지가 강한 옷은 재질만 바꿔도 환기되는 효과가 의외로 크다.
광택이 나는 소재는 빛을 반사하면서 화려한 인상을 주게 된다. 무대에서 스타들이 빛나는 것은 실제로 광택 소재의 의상이나 스팽글, 보석 등 소위 ‘블링블링’하는 소품들을 사용하여 실제로 빛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택 소재로 포멀함의 대명사 트렌치코트를 만들어냈으니 탈일상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아주 간단한 변화로 입는 사람에게 특별함을 부가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광택과 비광택, 이렇게 이질감이 나는 재료를 대비시켜 이목을 끄는 의상이다. 상의는 무광, 일상적인 소재이고 하의는 새틴으로 대표적인 광택 소재이다. 색상으로도 상의는 회색이고 하의의 연한 분홍색으로 빛이 반사되는 부분은 하얗게 되어 색상도 더욱 상의와 대비된다.
사실 이 옷에는 한 가지 공식이 더 숨겨져 있다. 바로 이미지의 대비를 같이 사용한 점이다. 트렌치코트란 보통 무릎 위까지 덮는 길이의 코트다. 그런데 그러한 코트의 허벅지 부분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속옷을 연상시키는 하의를 매치시킴으로써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이것은 갈리아노가 몇 시즌째 계속 밀고 있는 이미지 대비법이다.
상의는 재킷인데 하의는 거들이라던가, 하의는 풍성한 드레스인데 상의는 브래지어라던가. 수동적으로 속옷이 드러나는 것은 좋게 말하면 섹시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천박함, 칠칠맞지 못함인데, 능동적으로 당당하게 드러내놓으니 한 룩으로 인식이 된다. 게다가 속옷이란 여성의 굴곡 많은 인체에 직접 닿는 가장 공학적이면서 복잡한 구조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구조적 측면 뿐 아니라 심리적 측면으로도 속옷은 감추고 싶기도, 드러내고 싶기도 한 이율배반의 모순적인 영역이다.
이런 잘못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시한 폭탄 같은 영역을 갈리아노는 무리 없이 잘 디자인해낸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조합이라고 표현해야 하겠다.
이정도만 해도 천재 디자이너로 추앙받는데 손색이 없으나 그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계속 실험을 한다.
갈리아노는 아직도 실험 중
사실 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예전의 이미지를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다.
그가 워낙 옛것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어서 그런지, 역사적 지식이 풍부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고전적인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디자이너도 드물다.
하지만 이런 고전성을 실험하는데서도 그는 다른 디자이너와 차별이 된다. 그의 특기인 풍성한 실루엣으로 전환된 고전적인 의상은 옛것과 새것이 미묘하게 조화되어 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옷의 안쪽을 장식하는 장식물들은 북유럽의 어느 숲에 살고 있을 작은 부족의 전통의상용 소품 같다. 카라와 소매끝, 주머니 등의 트리밍과 머리와 옷을 장식한 각종 금속 장신구, 높게 여유분을 가지고 세워진 카라는 더욱 전통의상의 향취를 자아낸다.
거기에 수레바퀴와 금속물을 숭상할 것 같은 이 부족은 범상치 않은 허리 밑의 실루엣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치마는 둥그스름하게 밑으로 퍼지는 형상을 갖기 마련인데 이 의상은 허리에서 양옆 수평으로 뻗어나갔다가 밑으로 떨어진다. 그러한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갈리아노는 패턴과 제작상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리라.
그에 앞서 그러한 실루엣과 이미지를 생각해 냈다는 것, 그것이 갈리아노만의 디자인 방식이다.
그가 사람을 멋있게 만드는 것은 비단 옷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무대, 완벽한 여성을 위한 그의 실험을 옷에서 끝나지 않고 메이크업으로 완성된다.
도자기 인형 같은 룩을 완성하기 위해 코에 블러셔를 바르고 입술위에 금칠을 한 메이크업은 아직 눈에 낯설겠지만 어느 순간 그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관계없이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최경원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