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개성으로 유명한 존 갈리아노이지만 그의 파괴력 높은 개성의 안쪽 면에는 의외로(?) 고전주의적 전통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클래식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빛이 바래지 않는 강렬한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좀 더 안 쪽을 살펴보면 또다른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는 조형적 실력이다.
클래식 안에 고전주의 품격 갖춰
대체로 강렬한 개성과 시간은 반비례하기 마련이지만 존 갈리아노의 옷에서 만큼은 예외다.
매 시즌 눈을 후벼 팔 듯 한 개성을 선보이는 존 갈리아노의 옷이지만 몇 십 년이 지나도 그의 옷이 주는 매력이 시간에 쉬 증발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옷 안에 갖추어져 있는 고전주의적 품격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존 갈리아노 패션에서 강렬한 개성만을 챙기지만, 존 갈리아노 패션의 진정한 매력은 화려한 겉모습 안에 감추어놓은 이런 차분한 가치에 있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피카소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디오르의 옷을 사서 입고 다닌다고 해서 이런 가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 갈리아노의 패션에서 이런 클래식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옷을 입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정도로 그의 패션이 바닥을 드러낸다면 아마 몇 십 년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패션 세계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일단 고전주의적인 풍이 강한 그의 옷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클래식컬한 분위기 위에 자신만의 강렬한 개성을 독특하게 변형된 형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림①을 보면 귀족주의적인 원피스에 강한 주름 형태를 넣어 고전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인상을 주고 있는데, 바로 이런 특징들 때문에 존 갈리아노의 패션들은 다른 것보다 파격적인 개성으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런 형태를 만들고 싶다고 다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옷의 강한 이미지만을 챙기고, 그를 터질 듯 한 감성만으로 가득찬 그런 디자이너로만 생각하지만 이런 개성있는 형태를 만든다는 것은 감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몸에 대한 철저한 계산과 옷감을 다루는 탁월한 실력이 없다면 만들어 질 수 없다. 조금만 잘 못해도 옷의 주름은 찰랑찰랑한 물결이 아니라 근심 가득한 진짜 쭈글쭈글한 주름이 되기가 쉽다.
이런 자연스러운 주름의 아름다움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아니라 계산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바그다드를 연상케 하는 아라비아 풍의 바지가 인상적인 패션 디자인에서도 그의 황홀한 조형적 손놀림을 읽을 수 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듯한 바지의 주름과 금속 광택이 매우 매력적으로 어울려 있다. 허리에서부터 불규칙적인 듯하면서도 어떤 규칙성을 가지고 하체를 휘감고 내려오는 바지는 매우 파격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상의의 북실북실한 털 질감과 대비를 이루면서, 바지의 파격적인 구조는 조용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극한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나 구조가 보기에는 감각적이지만 결코 우연으로, 단지 디자이너의 막연한 개성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는 없다. 구체적인 천과,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디자인된 패턴이 없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이들 옷을 살펴보면 ‘과연’이라는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름다운 모양은 철저한 계산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
막연한 감각보다 뛰어난 재단 실력의 소산
사실 디자인계에서 존 갈리아노는 뛰어난 입체 패턴 실력을 가진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단지 입체 패턴이라는 특정한 기술에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조형적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존 갈리아노의 입체 패턴은 마치 화가가 하얀색 캔버스에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입체적인 사람의 몸 위에 천조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기술이나 숙련에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옷감의 자유로운 구성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인 것이다.
천조각과 가위만 들고 이런 옷들을 바로 만든다는 것은 패션계에서 흔히 생각하는 그런 화석화된 패턴 기술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경지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존 갈리아노는 조각가나 화가에 못지않은 조형 능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존 갈리아노의 옷에서 확인하고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조형 예술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옷은 단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라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수준의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기모노는 서양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옷의 유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갈리아노는 전혀 스스럼없이 기모노의 구조를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자기 식의 유형으로 전환시켜 놓는다. 보기에는 쉬워도 서양식 원피스 구조에 코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일본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존 갈리아노의 숨겨진 실력은 보통을 넘어서고 있다.
부분적으로 천을 꼬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원피스를 구성해 가는 모습이 패션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조각가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구조는 어떤 틀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형태와 구조를 고안하고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의 순수한 조형적 역량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것을 보면 그의 과장된 캐릭터와는 달리, 그는 조형적으로 상당히 아카데믹한 교육과 훈련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그의 개성이 전형적으로 표현된 화려한 색상의 디자인을 보면 파격적인 색상과 형태가 매우 규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우선 안에 입은 치마와 상의가 단순함과 복잡함으로 정확히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자의 형태는 머리카락의 색상과 머리카락의 모양과 대비와 조화를 동시에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자의 색과 치마의 색은 거의 비슷한 동일계통의 심플한 색으로 처리했고, 그렇기 때문에 상의와 나아가 머리카락과 얼굴이 부각되는 결과를 얻고 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 안쪽은 너무나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있는 것이다.
이처럼 존 갈리아노는 화려하고 파격적인 개성 안으로 고전주의적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 놓은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탄탄한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렬한 개성이 디자인의 표피를 불태우고 있더라도 내면으로는 차가운 중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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