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위에 장사
가+
가-

2010-04-30 오후 3:39:19

박사란 대학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학위, 또는 그 학위를 딴 사람이다. 역사적으로는 교수(敎授)의 임무를 맡거나 전문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주던 벼슬로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홍문관·규장각 등에 두었다고 한다. 요즘은 고학력 시대가 되어서 흔해진 것이 박사다. 그럼에도 이 자격은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지불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박사로 가는 길이 험난해도 매 과정마다 선생님 또는 지도교수가 있어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다행스러움도 있다. 최근 그 ‘박사’ 위에 ‘장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재담꾼들의 입담이려니 생각했던 나는 이윽고 무릎을 쳤다. 장사란 이익을 얻으려고 물건을 사서 파는 일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장수)이 아님에도 구분 없이 통용되곤 한다. 장사엔 과정이라는 것이 없다.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세월도 없다. 그렇다고 길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가르치는 기관도, 선생도 없다. 따라서 잘못 가더라도 미리 그 것을 지적해주거나 안내를 해주는 사람도 없다.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일과 결정이 고스란히 장사하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일정 기간 장사를 배우도록 뒷받침을 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장사가 잘 안 되어 빚 더미 위에 앉거나 길거리에 나아 앉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음에는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내가 ‘박사 위에 장사’라는 말을 접하게 된 것은 동대문의 의류 상가 대표들과 만나면서다. 박사인 내게 이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깊게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했다. 그 분들은 20대부터 장사에 뛰어든 60대의 초로들로 이 나라의 경제 발전사를 몸으로 만들어낸 주역들이다. 봉제 공장에서, 그리고 열악한 가게에서 시작한 산업이 경제 대국으로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개인이 장사에 성공하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많아지면 나라가 부강해진다. 자본주의의 시작이, 그리고 현대 문명의 발달이 이 장사와 깊은 고리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인식된다. 르네상스의 시작도, 16∽18세기의 중상주의 정책도 이 장사로 인하여 가능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던 부르주아들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던가도 생각하게 한다. 선비 정신을 중히 여겨 가르치고 배우자는 욕망이 컸던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관념이 오늘의 발전에 기여했음도 분명하지만 학교 공부 많이 하고 받는 박사의 위상이 지나치게 과대 평가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박사’보다 더 어렵게 이뤄낸 ‘장사’의 값진 땀과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동덕여대 명예교수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메이비원(주) | 대표:황상윤 | 개인정보보호책임자:신경식
사업자등록번호:206-81-18067  | 통신판매업신고:제2016-서울강서-0922호
TEL 02)3446-7188  |  Email : info@fi.co.kr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1길 6 (마곡동 790-8) 메이비원빌딩
Copyright 2001 FashionInsight co,.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