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레더데코의 「쌈지」라는 캐주얼 핸드백 브랜드가 탄생하였을 때 수많은 한국 20대 여성들이 열광했다. 당시 드레스 핸드백 브랜드들의 무겁고 딱딱한 디자인에서 과감히 탈피한 「쌈지」의 가방은 새롭고 혁신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쌈지」는 핸드백을 중심으로 다양한 액세서리들과 소품들을 한 매장에서 연결 판매하는 토털 잡화 매장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당시 백화점 1층은 동일한 브랜드의 핸드백과 지갑 벨트 소품 매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핸드백 브랜드 토털 매장의 개념은 국내에서 「쌈지」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쌈지」의 성공은 그 이전 핸드백 브랜드들의 성장 과정과 비교하였을 때 너무나 짧고 빠른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기존에 백화점 시장을 지배하던 메이저 핸드백 브랜드들은 「쌈지」의 성공을 그들의 위기로 인식하지 않았다. 당시 대표적인 핸드백 브랜드로는 ㈜기호상사가 라이선스로 도입한 「니나리찌」가 오늘날 「루이비통」백이 ‘5초 백’이라는 별칭을 들은 것처럼 80년대와 90년대 초 한국 여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국민 백’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기호상사는 또한 「가파치」라는 토종 핸드백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해 당시 대표적인 브랜드 성공 사례가 되어 있었다.
「쌈지」의 등장은 90년대 전세계적으로 소비자의 핵심으로 등장한 X-세대들의 반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에게 핸드백은 패션이었다. 이전의 핸드백 브랜드들은 단순 제조업의 시스템에서 생산된 핸드백을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90년대 말 「쌈지」의 혁신 앞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한국 최초의 토종 핸드백 브랜드 「가파치」를 운영하던 기호상사를 비롯하여 「쌈지」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이신우 콜렉션」 역시 IMF 당시 경영 악화로 부도 처리 되었다. 2000년대 초까지 몇 년간 「쌈지」는 승승 장구하였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영원할 것만 같던 「쌈지」에게 새롭게 찾아온 위기는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의 글로벌 트렌드가 밀려오기 시작하였을 때 이미 「쌈지」는 한국적인 너무나 토속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트 마케팅은 「쌈지」 마케팅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쌈지」만의 아트 마케팅은 대중들의 보편적인 기호와는 멀리 동떨어져 보였다.
전위적인 아티스트들의 이미지는 「쌈지」 스스로 그들의 마니아들에게 친근감을 떨어뜨리게 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쌈지」는 90년대 「가파치」가 그랬던 것처럼 핸드백 사업 이외에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였다. 거짓말처럼 당시 「가파치」는 벽돌까지 제조하여 브랜드 사업을 전개했다. 브랜드와 상품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열정만으로 글로벌 브랜드처럼 성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백화점 유통에만 의존해야 하는 한국 핸드백 브랜드들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2010년 한국 핸드백 기업들과 브랜드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쌈지」와는 다른 해외 라이선스 브랜드의 얼굴을 빌린 모습이거나, 세련되고 훌륭한 마케팅을 통해서 정당하게 한국 토종 브랜드의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쌈지」의 실패가 한국 토종 핸드백 브랜드 전체의 실패는 아니다. 오늘날 시장 변화를 이해하려면, 브랜드의 주인은 이제 더 이상 경영자 개인이 아니라 브랜드를 소유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쌈지」의 다양한 문화 사업은 영역을 넘나드는 경영자의 자유 분방함에서 비롯된 일이겠지만 부도 이후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한 시대를 마감하는 브랜드의 마무리가 씁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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