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한복 일습은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이다. 이들 중 조끼와 마고자는 조선 후기에 들어온 외래의 옷이다. 마고자는 대원군이 청나라에서 돌아올 때 처음 입고 온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끼는 갑오개혁 이후 양복의 베스트를 본떠 만든 것이다.
원래 우리 옷에는 포켓이 없다. 아마도 귀한 천을 잘라서 구멍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 담배 쌈지 그리고 안경집 같은 소품들을 허리끈에 매달고 다녔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입는 조끼에는 포켓이 몇 개씩 있어 그것만 입으면 허리끈에 무엇을 매달 필요가 없었다. 그 편리함 때문에 쉽게 우리 옷이 되어 한복에 필수적인 옷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다른 문화의 옷이 우리 옷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허리에 차던 주머니가 사라졌다.
vest라는 말은 영국의 Charls II세(1630~1685)가 입은 옷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이 옷은 지금처럼 소매가 없는 게 아니라 소매가 붙어 있었고, 무릎 길이였다. 이 옷은 값비싼 견(絹)에 금은 색사로 자수를 하여 화려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왕실에서부터 입은 베스트는 곧 전 유럽에 유행하여 실내에서는 겉옷으로, 외출 시에는 코트(justaucorps) 안의 받침 옷으로 입었다.
코트의 받침 옷으로 입을 때는 겉옷의 앞을 열어 놓거나 허리에서 한 두 개의 단추로만 잠가 고급 옷감에 금은 색사로 수놓은 화려한 베스트가 보이도록 했다. 17세기를 지나 18세기에도 이 옷은 중요한 남성복으로 애용되었지만 조금씩 변형되었다. 값비싼 옷감에 금은사로 수를 놓아 만들었는데 막상 보이는 곳은 앞자락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뒷부분까지 그렇게 비싼 옷감으로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이는 부분만 고급 옷감에 장식을 하였다. 그리고 소매가 없어지고 무릎까지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져 19세기에는 오늘의 조끼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현대 남성복의 기본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이 이 옷을 받아들일 때도 이미 베스트는 소매가 없었다.
여성들은 초기에는 이 옷을 남성들처럼 보온 목적의 언더웨어로 착용하다가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짧고 소매 없이 만들어 이브닝 드레스 위에 덧입었다. 이에 반해 남성복에서는 그 형태나 착용 방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의 남성 조끼도 뒤 판은 안감(안 좋은 옷감)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처럼 옷감이 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안감은 겉감보다 얇고 매끄러워 마찰력이 적어서 편리한 점이 없지 않으나 여성들과 달리 같은 종류의 옷을 수 백 년씩 입어내는 남성들의 옷에 대한 보수성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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