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의 갈비뼈와 하체의 골반뼈 사이에는 복부, 그리고 허리가 나타난다. 구조적으로 보면 위 아래로 뼈대들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이 부분만 근육이 홀로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위 아래에 비해 이 부분만 잘록해 보인다. 살이 별로 없을 때에 한해서…허리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것은 조형적인 부분이다. 허리는 여성적 아름다움의 원천일 뿐 아니라 아저씨나 아줌마스럽게 보이는 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패션에서 허리의 처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잘록한 허리의 다양한 가치
가슴 바로 아래 부분은 뼈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잘록하다. 위, 아래보다도 잘록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뜨인다. 때문에 이 부분이 잘록하지 않은 사람은 허리가 없다는 굴욕적인 소리도 감내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허리 부분은 몸 전체가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허리의 곡선은 몸 전체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가늘게 오므라든 잘록한 허리의 곡선은 여성성이 샘 솟는 원천이다. 남자의 경우 엉덩이가 작기 때문에 허리의 선이 비교적 완만하게 흐르는 데에 비해, 여성은 가슴과 엉덩이 사이에 있는 허리가 잘록해서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몸매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허리가 가늘수록 사람들은 여성적인 느낌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그래서 허리가 잘록한 정도는 일단 사람의 성별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아울러 허리의 잘록한 정도는 여성적인 인상의 강도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허리가 잘록해 보일 수록 여성적이며, 섹시해 보이게 된다. 그런데 요즘처럼 과장된 장식이 들어가지 않는 옷에서는 허리의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위에 있는 가슴과 아래에 있는 골반과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허리의 곡선은 강한 곡률을 이루며, 허리의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 그러나 무조건 허리가 잘록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옷을 입다보면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하여 섹시함을 최대로 표출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런 여성성을 절제하면서 오히려 차분하고 우아한 인상을 표출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졸업식이나 장례식장에 입고 가는 옷들은 일부러 허리 라인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 특징이 있기 때문에 상의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정리할 수 있다. 허리가 몸 안쪽으로 잘록하게 들어가든지, 아니면 밋밋하게 일자로 내려오든지........
허리선이 잘록하게 들어간 경우에는 단지 허리부분만 잘록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옷의 실루엣에 큰 변화가 생긴다. 결국 허리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흐르는 S라인이 만들어진다. 잘록한 허리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만 허리가 들어가도 이런 웨이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성의 경우에는 손쉽게 다이나믹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몸매를 표현할 수 있다. 섹시해 보이고 싶다면 이처럼 허리가 들어간 옷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가리면서 보이기
티셔츠같이 간편한 옷들이나 H라인의 정장 재킷들은 일부러 허리 라인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이다.
허리에 옷이 달라붙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좋기 때문에 일부러 일자로 만들기도 하고, 조형적으로 허리 라인이 안 들어가면 섹시한 이미지가 감소하면서 경건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허리선을 안 넣기도 한다. 아무튼 허리부분이 들어 가지 않으니 밋밋한 실루엣을 가진다.
요즘 패션들은 거의 육체적 특징들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옷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며, 사람의 아름다움도 그렇게 획일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획일적으로 되어도 안 된다. 인체의 아름다움은 희랍적 황금비례의 몸매뿐 아니라 칸트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에까지 이른다. 옷을 입은 사람의 지적 인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잘록한 허리를 감추는 것이 유리하다.
이세이 미야케의 패션 디자인들의 경우에는 허리선 뿐 아니라 신체의 여러 물리적 특징을 가리고 옷 자체의 지적 조형성들을 강화하여 옷의 위상을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물론 옷을 입은 사람의 내적 인상도 옷의 예술성과 더불어 극대화된다. 그래서 이세이 미야케의 옷은 예술가들이 특히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허리가 들어가지 않은 옷이 가지는 이중적인 성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론 허리 라인이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헐렁한 상의를 입었는데도 섹시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하게 커서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티셔츠를 입었는데도 둔탁하거나 지적으로 보이기보단, 허리 라인이 과도하게 들어간 옷을 입은 경우 보다 더 육감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이즈가 과도하게 커지면 몸매의 특징이 감추어져서 보는 사람들이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감춘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목선을 깊게 판다든지, 다리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류의 하의를 입어서 상의에 감추어진 몸매를 암시해주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데 허리의 잘록한 위치는 다리의 길이를 결정하며, 그리고 현대 패션에서 허리선의 위치는 다리의 길이를 암시하는 간접적인 실마리가 된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의 위치는 다리의 길이를 길어 보이게도 하고, 짧아 보이게도 한다. 따라서 상의를 입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가능한 한 다리가 짧아 보이지 않도록 허리선의 위치를 자기의 몸에 맞추어서 조화를 시키는 것이다. 다리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라면, 허리선을 실지보다 조금 올려서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허리는 인체의 가운데에 있으면서 조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우 복잡한 논리들이 얽혀있다.
S라인으로 보일 것인가. 다리가 길어 보일 것인가 등, 거의 모든 문제들이 허리를 둘러싸고 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런 여러 문제들과 가능성들 사이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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