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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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오후 3:55:45

성당이나, 교회의 건물은 유난히도 높고 뾰족하다. 마치 그렇지 않으면 교회나 성당이 못 되는 것처럼…. 그게 사실은 중세의 고딕 양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건축 양식뿐 아니라 성직자들의 옷 역시 몇 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세의 것을 고수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나 생활 방식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지금 아직도 중세의 그것들이 이어지고 있고, 비슷한 건물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인구가 증가하여도 중세와 달리 종교와 생활이 완전하게 동화되지는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중세는 종교가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전지전능한 신이 하늘 높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고, 그 신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을 높고 뾰족한 건축양식으로 표현하였다고들 한다. 이렇게 높고 뾰족한 형태는 건축에서뿐 아니라 그 시대의 복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에넹(hennin)’이라는 높고 뾰족한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얇고 하늘거리는 천을 드리워 우아미를 나타냈다. 당시의 건물이 높았으므로 높은 모자야 그런대로 조화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신발은 좀 다르다. 앞이 길고 뾰족한 ‘크랙코우(crackow)’라는 신을 신었다. 신발의 앞부리가 긴 것의 유행은 합리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유행은 성당이나 교회의 건물이 높이 올라가는 것과 더불어 신발 앞쪽이 길어지는 쪽으로 발전했다. 유행의 절정에서는 앞이 점점 더 길고 뾰족하게 되어 그 앞 끝을 어떻게 처리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만큼 되었다. 결국 그 끝에 체인을 연결하여 종아리 위로 올려 매어야 할 만큼 발전하였고, 이 희한한 유행은 복식 금제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금제도 앞을 길고 뾰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 신분에 따라 길게 할 수 있는 길이를 규제한 것이었다. 즉 왕은 발길이의 한 배 반, 그 아래 신하는 한 배, 평민은 자기 발길이 만큼… 하는 식의, 다시 말해 신분이 낮은 사람은 그 윗 신분의 사람보다 짧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신발을 길고 뾰족하게 하는데 얼마나 집착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신발의 재료는 비단이나 부드러운 가죽이었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지도 않았던 그 시대에, 비라도 내리면 어찌 했을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유행이다. 물론 진 땅에는 나무나 철로 된 덧신을 신었지만 마른 땅에서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하긴 유행이란 것이 어디 합리적인 것이기만 하였을까? 어떻게 이런 희한한 유행이 가능했을까? 학자들은 하늘 높이 계시는 신에 대한 동경이 이런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하며 종교가 유행에 영향을 준 예를 여기서 찾는다. 크리스마스라고 세계가 기쁨으로 들뜨고 몇 집 건너 교회나 성당의 십자가가 반짝이며 나날이 신도의 수는 늘어가지만 하늘의 신께 가까이 가기를 열망하여 뾰족한 모자나 앞이 뾰족한 신발을 신던 그 유행은 자취를 감추었다. 신에 대한 섬김의 자세가 덜 간절해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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