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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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6 오후 6:22:49

일주일 남짓한 파리 출장기간 동안 심각한 자장면 결핍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서울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본 ‘김씨표류기’라는 영화의 후유증 때문이었습니다. 이국땅에서 먹을 수 없는 것을 상상으로만 느껴야하는 고통, 여러분도 공감하시겠지요? 넥타이에 목을 매고 자살하려다 볼일이 급해 포기하고 마는 ‘배변 본능’이나, 사루비아 꽃을 빨며 그 달콤함에 더없는 기쁨을 느끼고, 급기야 자장면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먹겠다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식욕의 본능’은 일견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인간이 가진 엄청난 본능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본능으로 따지자면 프랑스 여인들의 ‘패션 본능’만 할까요. 루이14세 이후로 프랑스는 세계 여성들의 패션을 주도해왔습니다. 거리에선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자기만의 스타일과 당당함을 표출하는 개성은 세련된 패션으로 연출됩니다. 이러한 패션 본능의 바탕은 어려서부터 풍부한 문화를 경험하고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끔찍이도 소중히 여기는 ‘문화본능’이 그 뿌리가 아닐까 합니다. 센강 북쪽의 파리 3구와 4구 사이에 자리 잡은 ‘마레(Marais) 지구’는 파리에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잠시 잊혀 졌다가 1960년대 마레 지구 전체가 역사적인 사적지로 결정되며 대대적인 재개발과 복원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빅토르위고와 알퐁스도데가 살았던 집을 포함하여 이 곳에만 200여 곳의 역사적인 명소가 지정되었고, 프랑스 정부의 공공기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수없이 많은 문화공간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성적인 레스토랑, 카페와 더불어 뛰어난 감각의 패션 매장과 액세서리 매장들이 늘어나며 전 세계 젊은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새로운 패션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의 인사동에 가로수길과 청담동을 합쳐놓은 격입니다. 지난 10월 중순, 바로 그 파리의 중심 마레 지구에 대한민국 국적의 핸드백 브랜드로는 최초로 ‘루이까또즈(LOUIS QUATORZE)'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오프닝 행사가 열렸습니다. 원래 프랑스 소유였던 브랜드를 3년 전 한국 회사가 인수해 브랜드 재정립 작업을 거쳐, 근 30년 만에 고향땅이자 세계 패션의 심장부에 다시 입성시킨 것입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네들을 부러워만 하던 우리로선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연히도 같은 날 같은 공간인 파리에서 우리의 김연아 선수는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피겨스케이팅의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저는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지는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에겐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도전 본능’이 있는 듯합니다. 잘 아는 백화점 관계자로부터 “아마 한국의 소비자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일 것”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백번 공감합니다.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퍼뜨리고, 깐깐하게 품평하고, 디테일에 민감하고... 우리도 이런 장점들을 패션 본능으로 키운다면 10년쯤 후에는 대한민국 패션이 세계 속에 어떻게 서게 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김유진 루이까또즈 마케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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