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수 잎사귀는 엽록소가 분해되어 푸른빛을 잃어가고 쇼윈도에 가을 옷들도 본격적으로 가을 색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어쩐지 공기의 온도가 바뀌면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면 기분도 들뜨게 되고 옷이 사고 싶어진다.
푸릇푸릇하던 초록의 잎사귀들이 퍼석퍼석 노랗게 물이 빠져 가면 자연에 맞춰 옷들도 색이 변해간다. 가을이 되면 여름 내 원색적이던 옷의 색상들은 채도와 명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패션지에서 말하는 ‘올리브 그린, 브라운, 머스터드 옐로우, 딥 컬러’는 한 마디로 원색에 비해 어둡고 탁해진 색들이다. 맑아지는 건 새빨갛게 익어가는 감뿐이다. 매 시즌마다 끌리는 색이 바뀐다.
이번 가을엔 청보라색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잡지를 펼치니 세련된 감각의 최첨단을 달리는 외국의 엣지(?)있는 에디터들이 악센트 컬러로 청보라색의 스타킹과 구두 등을 매치시키는 것도 보이고, 쇼윈도에 걸린 원피스에도, 심지어 가을 메이크업 유행색도 보라색이란다.
사람들에게 끌리는 색이라는 것은 매출과 직결되고 따라서 패션 관계자들은 매 시즌의 트렌드 콘셉을 잡고 거기서 파생되는 트렌드 컬러를 뽑아 놓는다. 대부분의 가을 트렌드 컬러는 약간 어두운 밝기의 탁한 색들이기 때문에 청보라색처럼 순색에 가까운 색이 유독 눈에 튀어 보이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는 오랜 옛날부터 귀한 염료로 지체 높은 왕족과 귀족들만 쓸 수 있었다는 보라색이 대중적과 친숙해진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색인가는 찬찬히 고려해 봐야한다.
노랑 vs 보라
인류를 피부색으로 구분할 때 동양인은 황인종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피부가 노란색인가. 색은 상대적이다. 아주 짙은 밤색의 아프리카의 흑인과 그보다는 좀 밝은 갈색의 남아메리카인,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의 아메리칸 인디언, 중동의 탁한 갈색, 또 밝은 분홍색의 유럽인, 더 하얀 기운이 도는 북쪽의 유럽인 등에 비하면 우리는 노란 기운이 돈다. 사람 개개인의 편차는 차치하고 노란 기운의 동양인이 올 가을의 유행색인 보라색을 입는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살색(인종차별적인 말이라 요새 금지하는 단어이긴 하지만)을 만들기 어려워한다. 어렸을 적부터 크레파스나 물감의 살색만 썼지 직접 색을 조율해 만들어 써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학원이나 그 언저리를 다녀본 사람들이나 조금 섞어서 만들어 봤을까. 어디에서 파생된 색인지 감조차 찾기 힘들기도 하다.
거두절미하고 황인종이니 원류는 황색, 노란색이다. 노랑에 약간의 빨강으로 주황색을 만든 다음, 흰색으로 밝기 조절을, 보색인 파랑색이나 회색으로 탁한 정도를 조절해 주면서 피부색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내 피부색을 만들려면 굉장히 다양한 색이 섞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즉, 우리의 피부색은 채도가 낮은 색이다. 이런 색 옆에 청보라, 맑고 어두운 색이 붙는다면 피부색은 어떻게 보일까. 그림으로 확인해 보자.
중요한 것은 입었을 때 플러스 효과가 나야지 마이너스 효과가 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 옷을 입었을 때 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색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입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이 보편화 되면서 입어보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색에 대한 기초 지식이 튼튼하다면 쇼핑할 때 기준이 쉽게 세워질 것이다.
한 가지 꼼수를 쓰자면 유행하는 컬러를 사고 싶은데 어울리지 않을 때는 얼굴에서 되도록 먼 부위에 그 색을 걸치면 된다. 쉽게 말해 스타킹이나 구두, 가방, 하의로 유행색을 누리되 그로인해 얼굴색과의 어울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한결 줄어들 것이다.
‘빨강 머리 앤’은 서양인
하얀 피부에 까만 생머리가 청순형 미인의 척도가 될 때도 있고 여름엔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건강한 미녀로 각광 받을 때도 있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계절에 따라 바뀐다. 이번 가을엔 소녀시대 때문인지, 윤은혜 아가씨 때문인지 염색머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빨간 머리로 유명한 앤 셜리나 모델 카렌 엘슨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서양인이었고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화장을 하고 조명을 받은 상태의 사진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칫하면 실수를 할 수 있다. 나도 저런 색으로 염색하면 예뻐보이겠지?
하지만 얼굴에서 가장 가까운 머리색을 단지 그 연예인이 예뻐 보이고 유행한다고 따라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나 까무잡잡한 동양인이나 붉은기가 도는 사람은 단점이 더 부각될 뿐이다. 그렇다면 피부가 하얀 사람의 빨간 머리는 예뻐보이고 노랗고 빨갛고 검은 사람은 왜 안 어울리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어울림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는 명도 대비가 강하다. 하얀 피부가 검정이나 갈색 등 대부분의 짙은 머리색과 어울리는 이유도 명도대비가 강해져서 하얀색의 밝음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원리로 까무잡잡한 피부인 사람이 밝은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밝은 핑크색이나 오렌지색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명도대비가 확연히 일어나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란 피부는 채도대비도, 명도대비도 일어나지 않고 다만 색상 대비가 되기 때문에 노란 피부는 더 노랗게, 붉은 머리색은 더 붉게 보일 뿐이다. 또한 까무잡잡한 피부도 채도대비가 일어나 피부를 더 탁해 보이게 한다.
이렇듯 ‘나’는 ‘나의 얼굴’로 규정된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라는 것도 심리적인 차원보다 실질적인 신체의 일부, 즉 얼굴색과 비교했을 때 결정된다. 그런데 이렇듯 중요한 얼굴색을 무시하고 무조건 유행색을 따라간다? 결단코 안될 말씀!
<다음 호에 계속>
글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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