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더 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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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오전 10:01:44

겨울에 반팔을 입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자그마한 반팔의 앙고라 니트는 긴팔보다 훨씬 더 깜찍해보인다는 이유로 널리 사랑받았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집집마다 엄마와 딸 간에는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이는 집이 많아졌을 것이다. ‘너무 춥다’며 겨울에 왠 반팔이냐고 만류하는 어머니와, ‘하나도 안춥다’고 우기는 딸. 정말 딸은 하나도 춥지 않았을까. 난방 시설이 발달되면서, 사실 실내를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반팔과 긴팔이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질 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성들이 한 겨울에 짧은 미니와 반팔 니트를 입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춥기 때문이 아니라 더 가볍게 입으려는 유행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유행이 더욱 심해져서, 니트는 로(low)게이지의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처럼 출시되고 있으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얇은 시폰 소재의 블라우스나 드레스도 한 겨울 이너웨어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도 되면, 얇은 시폰 의류에 모피를 매치한 다양한 의상들이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출시된다. 보다 아름다와지고 싶은 여성들의 욕구를 막기엔 날씨도 역부족인 것이다. 이처럼 얇게 입으려는 시도는 난방 시설이 잘 갖추어진 현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프랑스혁명 직후였던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프랑스 여성들은 로브 앙 슈미즈(robe en chemise)라 불리는 얇은 가운들을 주로 입었다. 이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드레스를 흉내낸 것으로, 속이 비치는 얇은 소재들로 이루어진 엠파이어 드레스였다. 이 슈미즈 드레스는 몸에 달라 붙어 흘러내리 듯 하늘하늘하고 조붓한 실루엣을 연출하였는데, 문제는 이 드레스가 지중해 기후에는 맞을지 몰라도, 프랑스의 기후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록에서 로브 앙 슈미즈를 입고다니다 감기나 폐결핵을 얻은 여성들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그녀들은 남성들이 블라우스에 크라바트를 매고, 여기에 다양한 코트를 껴입고 다니는 동안, 오로지 얇은 슬립 가운 하나를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녔던 것이다. 어디 이 뿐이랴.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보다 비치고 달라붙는 느낌을 연출하길 갈구한 나머지 자신의 드레스에 물을 축여 축축한 채로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건강을 위협하던 패션은, 당시 여성의 나약함에 대한 비정상적인 판타지를 충족시키기까지 하였기에 여성들은 다소 기침을 하거나 덜덜 떠는 것을 기꺼이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 여성들이 가볍고 얇은 원단을 걸치고 싶어하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 꾸준히 보여온 욕망 중 하나이다. 20세기초 에드워디안 시대에도, 19세기와 같은 슈미즈 드레스는 아니었지만 얇은 모슬린을 사용한 화사한 드레스들이 트렌드의 주를 이루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우리는 몇 번이나 시스루(See-through)룩이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을 보았다. 얇은 옷은 여성의 부드러움과 나약함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잘 짜여진 테일러드 수트를 입은 강인한 섹시함과는 다른,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는 까닭이다. 얼마전 열렸던 2006 봄ㆍ여름 컬렉션에서는 얇은 소재에 대한 다양한 베리에이션 중 새로운 시도들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특히 재킷이나 트렌치코트 같은 아우터 아이템에 얇은 블라우스 원단이다 모슬린 등을 사용해 하늘하늘하게 구성한 아이템들은 이전에 보여졌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스커트 또한 보다 풍성하고 얇아져서, 여성들이 걸을 때마다 다리 주변으로 아름답게 휘날리도록 고안되었다. 여성들은 얇은 소재로 풍성한 스카프와 리본을 장식함으로써 보다 낭만적으로 자신을 변신시키고 있다. ‘얇게, 더 얇게’를 향한 여성의 욕망은 끝이 없으며 섬유 기술의 발달과 부합하여 새로운 소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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