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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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8 오후 5:34:07

내 결혼 때의 일이다. 그때도 결혼반지로 받는 다이아몬드의 크기가 마치 잘 한 결혼의 척도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던 그런 때였다. 어찌 하다 가난한 남편을 만나 18k 금반지로 만족해야 하는 결혼을 하였다. 짧은 신혼여행을 마친 뒤 친정에 갔다. 그때만 해도 결혼은 동네의 잔치였으므로 집안 가득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친정어머니께서 내 손을 끄시는 것이었다. 한 구석으로 나를 데리고 가시더니 무엇인가를 손에 쥐어주셨다. 보니,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그 무렵 우리 동네에서 딸을 대학에 그것도 서울 유학까지는 드문 일이었고 중ㆍ고등학교만 하여도 도회지에 가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그 지방의 정서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여건에서 공부한 딸이니 얼마나 좋은 곳에 결혼을 하는가 하는 것은 시골분들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그 당시의 정서로는 중간도 안 될 듯한 결혼이고 보니 어머니께서 그 점이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요란한 부자는 아니어도 그 무렵 시골에서도 어지간하면 남들 다 받아 끼는 다이아반지는 하나 끼워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께서도 크게 여유가 있으신 것이 아니었으므로 정말 마음 많이 쓰신 반지였다. 지금도 가끔 그 반지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이 작은 다이아몬드 때문에 어렵던 시절에 부모님께서 받으셨을 이런저런 부담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찡하다. 인간이 언제부터 왜 반지를 끼기 시작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대 이집트 18왕조의 발굴품 중에 반지가 있으니 그 역사가 긴 것은 확실하다. 또한 반지를 많이 끼었던 사람을 들라면 고대 로마인을 빼 놓을 수 없다. 가운데 손가락을 제외한 모든 손가락에 낀 것은 물론이며, 발가락에까지 끼었다. 그 형태 역시 다양하였다. 갖가지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것은 물론 그 크기가 손가락 마디 하나를 다 가릴 만큼 큰 반지를 끼기도 하고, 비밀문서나 서신을 봉하고 봉투에 촛농을 떨어뜨린 후 굳기 전에 특별한 표식을 찍어 비밀이 완전하게 보장될 수 있게 하는데 쓰였던 ‘인장반지’도 있었다. 열쇠를 매달아 필요와 장식을 겸하게도 하였으며, 때로는 누군가를 헤치기 위해 독약을 반지 안에 숨길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였고,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나란히 조각하기도하고, 오목 볼록하게 끼워 맞추도록 된 페어 반지까지 그 종류나 용도가 매우 다양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반지 중 가장 심플한 것은 약혼반지였다. 아무 장식이 없는 것은 물론 철사나 금으로 된 실 반지였다. 이것은 남자가 자기 미래의 신부에게 끼워주었는데, 이 반지를 끼운 손가락으로부터 특별한 신경(special nerve)이 직접 심장으로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실반지는 완전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양의 문화가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 가게 되면서 결혼 풍속도 닮아가게 되었다. 오늘날 이 같은 약혼반지의 풍속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약혼반지에 보석을 하나 박기도 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것이 다이아몬드이다. 이것은 그 값이 비싸고 귀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순결, 정결의 의미와 두 사람의 애정의 불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뜻에서란다. 결혼반지를 고대 로마의 약혼반지처럼 아무 장식이 없는 실반지로 교환하는 곳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 되었건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 결혼이라는 의식을 행하는데 있어서 반지의 의미는 순결과, 변치 않는 애정과, 서로간의 특별한 배려의 약속일 것이다. 값비싼 보석반지는 둘이 살아가면서,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하나씩 마련해 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간혹 혼수가 문제가 되어 사랑에 금이 가는 것을 본다. 양가가 다행히 여유가 있어 새로 시작되는 가정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도록 배려한다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를 넘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더 없이 어리석은 짓이므로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나 지켜보는 그들의 부모가 한번쯤 로마인의 실반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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