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가면 핸드백을 잔뜩 쌓아 놓고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큰 시장을 이루게 된 핸드백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인간이 필수품을 몸에 지니고자 했던 욕구는 인류의 존재 시기부터였으리라. 이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관대를 통하여도 확인되는 바다. 어느 민족이건 허리에 무엇을 맨 것은 다를 바 없으나 우리 조상들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남긴 사람들은 없다.
이처럼 허리에 필요한 것을 매달고 다닌 것, 그것이 핸드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허리에 매달던 것이 사람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주머니 같은 것을 만들고 그 안에 필요한 물품들을 넣어 다니게 되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주머니를 만들어 패용하기 시작한 연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귀부녀들이 허리에 금탁(金鐸)과 금향낭(錦香囊)을 찼는데 많이 차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고 하고 있어 이때에는 주머니를 찼던 것이 확실하며 그 이전부터 이런 습속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패용되던 주머니는 조선조에 와서도 남녀 모두에게 애용되었고 수를 놓는 등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서 패용 하였다. 조선 말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유품 중에도 생존시의 주머니가 있다. 그 주머니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것들이다. 색색의 비단에 자수를 놓은 것은 물론 진주, 밀화, 금방울 그리고 각양각색의 매듭과 수술로 장식되어 있다. 서양의 주머니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서양에서 허리에 매달던 주머니가 손에 드는 백으로 바뀌는 것은 나폴레옹 1세 때이다. 당시 엠파이어 스타일의 스커트는 얇고 가벼운데다 젖가슴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게 입었으므로 옷에 포켓을 달기도. 허리에 주머니를 매다는 것도 어려웠던지 비단 주머니를 만들어 손에 드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 이후 손에 드는 핸드백을 여러 가지 재료와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켜가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들어온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기네 것을 완전히 버려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선천적인 손재주로 만들던 비단주머니에서 현대생활에 맞는 백으로의 발전이 계속 되었다면 독특한 우리만의 핸드백으로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남의 나라 핸드백만 좋아라 이것저것 사들여야 하는 행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것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비단주머니처럼 예쁜 우리의 핸드백이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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