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이 황제로 제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 시대는 신고전주의가 사상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 옛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동경하고 따르던 그런 시대였다.
따라서 의상도 허리선이 바로 젖가슴 아래까지 올라가서 발목까지 흘러내리는 치마의 주름이 마치 그리스 시대의 건축물의 원주처럼 표현되는 이른바 엠파이어 스타일이란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유행 스타일이었다.
뻣뻣하거나 두꺼운 옷감으로는 흐르는 듯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표현할 수 없었던지 하늘하늘 하면서도 안이 들여다 보이는 얇은 천으로 만들어 입어 여인의 하체가 그대로 비쳐 보이도록 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 미인의 조건은 옷을 가볍게, 그리고 조금 입는 것이 필수였다.
한 기록에 의하면 “이 시대의 우아한 부인은 보석과 신발을 포함하여 8파운드 이상의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다. 8파운드란 3.5Kg이 넘는 무게로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무게(약 1Kg)와 비교하면 몇 배나 무겁지만, 18세기에 속에 받쳐 입더 압눈 틀 하나의 무게만도 대단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고 있었다. 이 혁명의 상당 부분은 섬유산업에서의 혁명이었기 때문에 직조기가 발명되고 따라서 많은 양의 직물이 단 시간 내에 짜여지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섬유산업을 육성하려 하였다. 하지만 워낙 얇고 가볍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으므로 나폴레옹은 묘안을 내었다.
아무리 추워도 파티 장소에는 난방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또 공식적인 장소에 같은 옷을 두 번 입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찌되었던 이 묘책은 성공한 듯 하다. 후에 그가 쓴 자서전에 의하면 프랑스의 산업혁명은 본인에 의한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렇다. 그의 직물 과소비 정책이 성공을 해서인지, 뒤에 오는 유행에 밀려서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유행은 나폴레옹의 퇴장과 함께 끝이 났다.
우리는 이 같이 지난간 사실들을 들추며 유행의 아름다움보다 이로 인해 벌어졌던 어리석은 일들을 보고 웃지만, 지금도 똑같은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요사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멍청한 것은 용서가 되어도 뚱뚱한 것은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말로 바꾸면 반드시 날씬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사회적으로 날씬한 미인을 칭송하기보다 건강의 중요성이나 그 필요성을 강조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렇다해도 죽음을 불사하고 따르는 것이 유행이니 그 유행의 힘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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