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전파되는가는 몇 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상류계층에서 시작하여 밑으로 흐르는 하향식 유행이 있는가 하면, 하류계층의 것이 위로 전파되는 상향식, 그리고 동료 집단을 중심으로 확산되어가는 수평식이 있다. 흥미로운 일은 복식사를 공부하다 보면 각 시대의 유행을 주도했던 왕비의 복식뿐 아니라 인간 됨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뜨와네뜨는 그녀의 화려했던 외양과는 달리 그녀에 대한 국민 감정은 매우 나빴던 모양이다. 프랑스 혁명에 직접 불을 붙이는, 그래서 그녀와 자기 가족을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느 왕도 다 같겠지만, 나폴레옹 3세 역시 여러 여인을 거느려 유제니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래서 바람 피우는 남자의 아내였던 유제니를 온 국민이 동정하고 사랑했다.
그러면 유제니의 어떤 점이 그토록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했을까? 그녀 역시 대단한 멋쟁이였고, 유행의 창조자였던 점은 마리 앙뜨와네트와 다르지 않다. 그녀는 수에즈운하 개통식에 수백 벌의 옷을 가지고 갔다는 기록도 기록이려니와 C.F. 워스라는 전속 디자이너를 두어, 새롭고 아름다운 옷을 수 없이 만들어 입었다. 워스는 천재적인 디자이너로 지금도 전 세계의 유행을 좌지우지 하는 오뜨 꾸튀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아름다운 유제니가 입고 등장하면 전 유럽의 여성들이 따라 하기 바빴고, 이들이 만들어낸 유행은 크리놀린(crinoline)이란 이름으로 복식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상상할 만하다.
크리놀린이란 스커트 안쪽에 새장 같은 속옷을 입어 치마폭을 넓히는 것으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비비안 리가 입었던 폭 넓은 치마가 그것이다. 이 유행은 점점 치마폭을 더 넓혀가면서 여러 가지 폐해를 남기게 되었다. 무도회장의 홀이 아무리 넓어도 크리놀린의 여인이 몇 명만 모이면 가득 찼고, 비상시에는 문을 빠져 나오기 힘들어 난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제니는 이 같은 상황을 구경만하지 않았고,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당시 패션 리더의 하나였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문제의 크리놀린을 착용하지 말자고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런 마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유행이란 창조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멋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행 감각을 선도하며 호감과 사랑을 받는 이도 있으니 이것을 헤아려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송명견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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