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rian purple (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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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오후 3:44:55

티르는 지중해에 면해 있었으므로 일찍이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바다에 의존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이 염료였던 것이다. 이 염료는 지중해 연안에서 잡히는 조개(shell-fish)의 내장에서 원료를 채취했다. 2000개의 조개에서 1g을 얻을 수 있다 하니 옷 한 벌을 염색하려면 수 천 마리의 조개를 해부해야 가능했을 것이다. 가나안이 자색 또는 무역상 등의 의미가 있는 말이라는 것과 티르가 항구도시로 무역과 상업으로 번창했던 점등을 미루어 볼 때 자색 염료는 가까운 서방은 물론 멀리 동방으로까지 수출되어 동양의 일부 특수 계층에서도 사용했으리라 생각 된다. 다음 기록은 세종 9년에 사간원의 상소문의 일부이다. “~사치를 물리치는 것은 나라의 良規이므로 사치를 금해야 한다. 지치(자초)와 홍화는 비록 우리나라에서 나기는 하나 희귀하고, 단목(丹木)은 왜인이 파는 것에 의존해오고 있는 터에, 이제 위로는 卿大夫에서 아래로는 賤隸에 이르기까지 자색 의복을 좋아하여 한 匹을 염색 하는데 한 필 값이 들며, 옷 안도 모두 홍염 하므로 丹木과 紅花의 값이 또한 얕볼 것이 못되니~, 자색은 진상의대나 궐내 소용 외는 금하고, ~” 세종 8년 기록에 의하면 자색 옷에 댄 안감을 홍색으로 염색할 때 사용 된 단목이라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했으나 그렇다고 일본산이 아니고, 海路로 일 년여나 걸리는 서양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일부 염료가 무역에 의해 수입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색염료가 생산 되었다는 점이다. 티르 사람들은 그 원료를 조개에서 얻었지만 우리조상들은 芝草 또는 紫草라 하는 식물에서 얻었다. 鷄林志에 의하면 고려 시대에는 이것에 의한 염색이 발달해 이 식물을 찧어 만든 염료로 염색을 하면 색이 기묘했다고 한다. 과거부터 이 자색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히 여겼다.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조 초기부터 여러 차례 자색사용 금지령이 내려졌던 것을 보면 차츰 서민도 이 색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치스럽다며 자색을 금지한 것은 이 염료에 대한 생산 의욕을 감소시켰고 세월을 거듭하면서 점차 흔적을 찾는 것 조차 어렵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모든 물품이 가까이에서부터 사랑 받고 인정 받아야 발전되고 유명해지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시장 원리다. 이 것도 계속 육성 발전시켰다면, 서양복식사에 티르사람의 퍼플이 아닌 고려나 조선의 자색으로 소개되어 우리의 명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지난 6월 말 이탈리아 밀라노 Montenapoleone(세계적인 패션 스트리트)거리의 세리느 매장 쇼윈도에 퍼플의 코트를 입은 귀족(?) 마네킹이 올 가을/겨울 시즌의 유행을 시위라도 하는 듯 서있는 것을 보았다. 사치도 큰 사회 문제가 될 수 있었겠지만 기득권층이 세세 무궁토록 자기들만 누려야 하는 차별화 의식이 오늘의 결과로 남은 것은 아닐지, 혹시 지금도 똑 같은 우(憂)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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