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rian purple (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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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오후 5:47:54

색(色)을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쉽지않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눈으로 느끼는 것이 색이니 색이 무엇인지 새삼 따지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인듯도 싶다. 색을 알거나 모르거나 이미 색들 속에서 살아가며, 그 많은 색들을 사용하는데 전혀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좀 달랐다. 염색물이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더 나아가 신분표시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색으로 신분을 구분코자 하였던 것은 동서양이 다를바 없었다. 동양에서 황색이 최고의 색이었다면, 서양에서는 紫色(자색∙purple )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색이란 보라색이다. 영한 사전에서 purple을 찾으면 “ 귀족 ” 이란 또다른 해석을 볼수 있다. 황제나, 개선 장군 등 신분이 높은 귀족들만이 사용할수 있는 색이었던 것이다. 물론 색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원료가 귀하고 염료의 채취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워 쉽게 염료를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렇게 귀한 색이 이 땅에서도 일찍부터 신분에 따라 사용되었다. AD 260년 백제는 계급에 따른 관식(冠飾)과 복색(服色)을 정하였던 기록이 있다. 즉 머리에 쓰는 관의 장식과 겉옷의 색과 옷을 묶는 帶(대)의 색으로 상하 등위를 구분한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자색의 帶는 최고 관리가 맬 수 있었다. 이로부터 2세기 반 후에 신라도 4색 공복제도를 정했다. 즉 4가지 색으로 상하 등위를 구분하는 4색 공복제도를 도입했다. 백제가 옷의 색깔로 자(紫)를 쓰지 않고 대의 색으로만 사용하였던데 비해 신라는 겉에 입는 포(袍)의 색을 자색으로 하여 성골, 진골 계급만 착용토록 하였다. 이 자색의 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까지도 최상의 관리들이 입었다. 신라는 당나라의 여러 제도를 받아들였는데 4색 공복제도도 그 중의 하나이며, 자색이 최고 관직자들의 색이었던 점도 같다. 중국에서도 자색은 황색 다음으로 격이 높은 색이었다. 결국 자색은 동서양에서 모두 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이 귀한 자색이 어떻게 염색 되었는지, 염료가 어디서 생산되어 어떻게 입수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염색 방법이 있었겠지만 그 염료가 귀했음에는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서양의 자색은 티르라는 항구 도시에서 생산된 염료에 의한 것이라고들 한다. 이곳 티르의 자색이 얼마나 유명하였던지 Tyrian purple(티르의, 티르인의 자색) 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티르는 지중해에 면한 페니키아의 항구 도시였다. 우리 성서에 두로라는 지명으로 표기되고 있는 곳이다. 고대어의 세계적인 학자, 장국원 박사에 의하면, 페니키아는 가나안과 같은 지명으로 보라빛, 보라빛 물감, 보라빛 비단상인, 무역상 등의 뜻을 가진, 헬라어이고, 가나안은 히브리어 명칭이라고 한다. 가나안이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된 것이 기원전 14세기라하니 그 명칭의 뜻으로 미루어 본다면, 그 때에도 이미 자색이 생산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신비의 자색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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