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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하는 브랜드보다

2008-07-21 오후 1:51:40

2005년 2월 초, 서울 서초동의 한 사무실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여성복 시장이 민주화가 덜 되었으니 그 쪽으로 가야겠다.” “캐주얼 시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시장경쟁이 치열하고 후발업체로서 시장진입이 쉽지 않겠지만 캐주얼 시장에서는 성공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유통과 생산 모두 좋은 협력업체들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이고, MD와 디자인 분야에 좋은 인력도 쉽게 확보 할 수 있습니다. 여성복은 경험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데다 이 시장 역시 강한 경쟁자들이 많습니다.” “그래 맞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캐주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캐주얼 시장은 이미 (소비자들의) 지불가치와 (상품의) 사용가치의 차이가 크지 않고 비교적 일치 하제. 그래서 캐주얼 시장에 신규 브랜드를 출시하면 소비자들에게는 이름만 다른 또 하나 브랜드가 될 끼다.” 사무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무집기 하나 없는 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두 남자는 도상현 사장과 유성진 이사였다. 전 직장을 퇴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했기에 직원을 뽑을 수도 집기를 살 수도 없었다. “여성복 시장에는 아직까지 지불가치와 사용가치의 차이가 크다. 옷 값이 너무 비싸다 아이가! 여성 소비자들 역시 좋은 옷을 좋은 가격에 사고 싶어 한다. 어렵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캐주얼 신규 브랜드를 내놓을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깨고 도상현 사장은 여성복 시장을 겨냥했다. 여성복을 만들어 보지도, 여성복을 팔아 보지도, 여성복을 입어 보지도 않았지만 성공의 경험이라는 편안한 유혹을 뿌리치고 알 수 없는 세계로의 첫발을 디뎠다. 캐주얼과 여성복이 시장도 다르고 소비자도 다르지만 근본적인 욕구는 같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시장이 원하는 브랜드 운영의 원리는 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 다른 여러 브랜드들의 신규 론칭은 캐주얼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3년이 지난 2008년. 같은 시기에 탄생했던 브랜드들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거나 아예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여성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여성 상품기획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해서 또, 제대로 된 여성복을 만드는 생산 라인을 알지 못해 ‘볼품 없는 캐주얼 같은 옷’을 만들었던 「지센」은 1000억 원을 넘는 매출을 올리는 중견 브랜드로 성장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IMF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의 패션 산업은 ‘효율’이라는 두 글자를 배웠다.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효율’은 잘 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패션 산업을 과거 지향형 사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패션인도 소비자도 미래가 없는 패션 산업을 떠나고 있다. 잘 알려진 익숙한 길을 가지 않고 가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기대가 되기도 또 두렵기도 한 길을 걷는 이들을 개척자 또는 창조자라고 한다. 움츠리고 떠나는 이가 많을 때가 새로운 시장이 태어나고 새로운 영웅이 준비 되는 때다. 우리 패션 산업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황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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