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빌미로 노출이 보편화 되고 있다. 세상이 달라져서일까? 은밀한 방 안에서도 행여 누가 볼까 한번 더 주위가 살펴 질 것 같은 그런 차림으로도, 어느 곳에서나 당당하기만하다. 하긴 유행이라는 거센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같은 상황에 대하여 사람들은 시대를 탓하곤 한다. “세상이 변하여” 또는 “요즘 아이들은 이해 할수 없어” 등등. 마치 옛날에는 유행 같은 것은 물론 눈살을 찌푸릴 일은 절대 없었던 것처럼 과연 그랬을까?
조선조 영조 때의 일이다. 당시 여인들이 머리모양을 크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자기의 머리카락만으로는 크고 화려하게 꾸밀 수 없기 때문에 가체 (가발)를 더하고, 그위에 갖가지 보석이 박힌 장식품들로 치장을 하였다.
이덕무의 [靑莊館全書]에 의하면 그 당시 한 부자 집에 13세 나이어린 신부가 머리모양을 크고 무겁게 치장을 하고 긴장하여 앉아 있다가 시아버님이 들어오시자 갑자기 일어나다 머리 무게에 눌려서 넘어져 그만 목 뼈가 부러져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 머리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며, 그 폐해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 할만하다. 이쯤되면 조정에서도 큰 사회 문제의 하나로 논의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영조 25년 조정에서 정식으로 논의되고, 왕에게 이같은 유행을 금하여 줄 것을 건의한다. 영조 실록에 의하면 이같은 문제 해결에 왕이 개입하는 것을 처음에는 꺼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전략) 신하들이 자기집 사람의 머리 사치를 금하지 못하는데 내가 이를 금하고자 하니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피하였지만 그로부터 7년 후인 영조 32년에 “(전략) 요즘 사대부가의 사치가 날로 성하여 부인의 한번 가체에 곧 백금을 소비해 가면서 서로 본받기를 힘쓰고 되도록 크게 만들려고 하므로 이를 금한다.”고 가체 금지령을 내렸다. 이 금지령은 실시하지 못하였거나, 형편상 중지된 듯 하다. 그후 몇 번의 논의 끝에 다시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부인의 발(髮)을 후(後)하여 궁양식으로 하되 상민이나 천민은 그대로 두라.(중략) 사족 부녀로 하여금 다시 가체를 못하게 하라.” 영조 33년 12월의 일이다.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하였던지 다음 정월에 다시 추가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지켜지지 않았던것 같다. 영조 38년 다시 사헌부에서 새삼스럽게 여염집의 체계를 금해야하겠다고 주청였으나, 39년에는 이 발제 개혁도 중단하고 만다.
그시절 왕명이란 얼마나 지엄한 것인지 상상할만 한 상황인데도 이 가체 금지령은 완전한 실패로 끝난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뜻있는 이들의 염려와 지탄, 그리고 견디다 못해 내려진 왕의 금지령도, 순종과 부덕을 최고 미덕으로 삼던 그 옛날 여인들의 유행도 막지 못했으니 유행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미루어 생각해 볼만하다.
조선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국가의 공권력이 유행을 잡지 못한 예는 더 있다. 미니스커트의 유행도 그 중 하나이다. 1965년 영국에서 시작된 미니가 신문의 해외 토픽 난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개되었다. 오늘은 무릎 위 몇 cm이며, 늘씬한 종아리에는 어떤 스타킹이 신겨졌다고.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이땅에 미니를 착륙시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한국에서 미니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왜냐하면 미니를 입을 종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 여자들이야 종아리가 늘씬하니 미니가 아름답지만 조선 무우 종아리엔 어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미니는 명동, 종로를 지나 온 서울은 물론 도시, 농촌, 어촌, 산촌에까지, 노소 구분없이 휩쓸고 갔다.
당시 5.16군사 정권은 급기야 짧아진 스커트의 길이가 미풍양속을 깨는 일이라고 경범죄로 다스리기까지 하였다. 경찰들이 자를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그 유행을 중단시키지는 못하였다.
나랏님도,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 정부도, 그 누구도, 어떤 힘으로도 흐르는 유행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행이라면, 배꼽이 다 나오든, 가슴이 다 노출되든,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까지를 다 드러내든 그것을 막을 힘은 없다. 다만 파도처럼 밀려올 다음의 새로운 유행을 너그러히 기다릴 수 밖에…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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