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 기념일’이었습니다.
이날은 프랑스 최대의 국경일입니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북적이며 군인들의 시가 퍼레이드가 벌어졌고, 에펠탑 부근에선 멋진 불꽃 축제도 열렸습니다.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을 가져다 준 대표적 시민혁명인 프랑스혁명은 1789년 7월 14일 성난 군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촉발됐습니다.
혁명이 일어난 때는 루이 16세 시기이지만 그 발단은 루이 14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짐(朕)은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그는 유럽 열강을 상대로 수많은 전쟁을 벌였으며, 극도로 사치스러운 궁정생활을 통해 프랑스 재정결핍을 초래했습니다. 뒤를 이은 루이 15세는 선왕만큼이나 많은 전쟁을 일으키지만 번번이 패배했고, 무너지기 시작한 국가재정은 루이 16세 시대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브랜딩의 개념에서 프랑스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현재의 프랑스가 누리고 있는 <국가 브랜드>의 가치창출에 있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민혁명의 원인이 된 ‘루이 14세’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편집증적으로 뛰어난 미적 감각은 프랑스를 명품 생산의 근원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가 만들거나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브랜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트쿠튀르’와 오늘날 패션 산업의 핵심이 되는 모든 제도들 즉, 유명 패션디자이너, 유명 브랜드, 패션 시즌, 패션 퀸, 유행을 알리기 위한 여성 패션 잡지도 이 당시 처음 생겨났습니다.
지금은 보편화 된 ‘헤어드레서’도 이미 루이 14세 시대에 처음으로 탄생했습니다. ‘샴페인’ 또한 그 당시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고(1670년경 ‘돔 피에르 페리뇽’이 만듦), 프랑스 요리가 세계 최고급 요리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 입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맥주를 파는 선술집 같던 영국과 독일의 커피점이 프랑스로 건너와 멋쟁이들이 모이는 근사하고 고급스런 ‘카페’(1675년 ‘카페 프로코프’가 현대식 카페의 원형)로 재탄생된 것도 이 때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보석의 제왕이 되고 ‘카르티에’, ‘쇼메’ 같은 보석 명품의 고향이 모두 파리인 것은 다이아몬드의 광채에 대한 루이 14세의 편애 덕분이었습니다.
밤에도 여흥을 즐기기 위해 개발된 것이 세계 최초의 ‘가로등’이었고, 1709년에는 최초의 ‘접이식 우산’도 제작됐습니다.
이탈리아가 강세를 보였던 거울과 향수산업의 주도권을 프랑스가 쥐게 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실내장식 서적’과 ‘관광 가이드북’이 출간됐고, ‘쇼윈도’의 개념이 만들어 졌습니다. 루이 14세가 완성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그 규모나 화려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으며, 1979년 유네스코는 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의 파리는 예술과 낭만을 찾아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여하튼 선조들이 남겨놓은 브랜딩의 유산으로 그 후손들은 300여년 전 그의 의도처럼 세계가 부러워하는 풍요로운 문화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루이까또즈 마케팅팀장·호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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