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닮은 스파이의 슬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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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7 오전 11:54:16

영화 <블랙북>의 무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자락을 향해가던 1944년 네덜란드다. 탈출을 시도하던 레이첼의 가족은 독일군에게 발각돼 모두 죽고, 그녀만 홀로 살아남는다. 그녀는 독일군에 스파이로 침투, 독일군 장교 문츠의 연인이 된다. 이후 본격적인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그녀는 문츠를 사랑하게 된다. 문츠 역시 레이첼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도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한다. <편집자주>

<로보캅> <원초적 본능>을 감독했던 폴 버호벤 감독이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 <블랙북>으로 이전 영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블랙북>은 미래적인 코드의 상상력 대신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극적인 반전과 치밀한 구성력에 비해 스토리는 간단하다.
‘블랙북’은 국가 1급 기밀을 담은 문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네덜란드. 전직 가수 출신인 레이첼(캐리스 밴 허슨)은 적진에서 1급 비밀을 빼내는 공적을 쌓았다. 더구나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큰 공을 세웠던 그는 오히려 독일군 장교와의 사랑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반역자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독일군 장교와 사귀었다가 스위스로 도망했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처럼 말이다.


레드의 강인함이 선사한 평온한 블루
영화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폴 버호벤 감독은 전쟁의 작은 조각을 로맨스와 인간 탐구로 영리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천성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는 뻔뻔하게도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이야기와 삶의 도구로 이용하는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죽고 사는 곳에서 여성의 정조와 사랑은 사치일까?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 현재의 이스라엘 장면에서 여주인공 레이철은 블루 스카프에 블루 원피스를 입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족들과 살고 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그녀가 겪은 2차 대전 때처럼 포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회상 신으로 들어가자 레이첼은 가슴 부분에 풍성한 러플이 잡힌 플라워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다. 첫눈에도 부잣집 딸로 유복하게 자란 티가 묻어난다. 유대인인 그녀는 기독교 집안에 숨어있기 위해 다락방에서 성경을 외우고 식사 때면 다락방에서 나온다. 어느 날 강가에서 팝송을 듣다가 한 동포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려는 순간 독일군의 폭격은 시작되고 그녀가 묵었던 집은 산산조각이 돼 버린다. 하지만 잔해 속에 남은 신분증 때문에 그녀는 독일군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소 빛 바랜 플라워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한 때 잘 나갔던 가수로서의 나르시시즘과 전쟁으로 인한 궁핍한 일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원피스에 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독일군에게 다리를 드러내며 조롱하는 모습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다. 결국 레이첼은 독일군의 이유 없는 유대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다가 독일군의 기습에 의해 가족은 물론 탈출을 시도했던 모든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다.
눈앞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본 레이첼은 복수를 결심하고 네넬란드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공장장이 레지스탕스의 대장. 이때 스타일은 원피스에 두건을 매치한 전형적인 유럽식 빈티지룩이다. 전쟁 속에서 여성성이 제거된 채 노동력으로 전락한 무표정한 레이첼에게서 이전의 섹시미는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중 한 조직으로부터 스파이 임무를 제안받고는 기꺼이 복수에 나선다. 이때부터 그녀의 복장은 코트와 모자로 철저하게 위장한 매니시한 스타일로 등장한다. 빈티지 밀리터리룩 정도면 해석이 가능할 듯하다. 한편 스파이 작업을 수행하다가 만난 독일군 장교 문츠와 만남이 잦아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그녀의 스타일은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는 페민닌룩으로 변주된다. 섹시하면서도 엘레강스한 스타일에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었다. 머리까지 노란색으로 염색한 그녀의 변신은 스파이로서, 여성으로서의 완벽한 변신을 보여준다. 처음 독일군 파티에 간 그녀는 처음에는 속이 다 비치는 검은색 망사로 된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수줍게 ‘로라’를 열창한다. 마치 첫 스파이 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그대로 의상에 녹아있다.
문츠 대위와 본격적인 사랑에 빠진 그녀는

유재부 기자
jby@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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