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빌리오 지구의 한 근사한 현대식 호텔 바(bar). 아페르티보가 끝나갈 무렵 특별 서비스로 포모도로(pomodoro, 토마토), 모짜렐라(mozzarella), 바실리코(basilico)로 만든 꼬치가 나오자, 우리들 외국인과 같이 있던 세르조와 리카르도는 이탈리아 국기가 나왔다고 반가워하며 시식을 권한다.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기도 하는 삼색의 이탈리아 대표 음식을 맛보며 “그럼, 제가 지금 이탈리아를 먹은 거네요” 하며 농담을 나눈다. <밀라노=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자유, 평등, 박애의 뜻 담긴 이탈리아 국기
이탈리아 국기(國旗)는 녹색(verde), 흰색(bianco), 빨간색(rosso)으로 된 삼색기(tricolore)다. 흔히 삼색기는 프랑스 국기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한국의 국기에서는 태극 문양을 썼기 때문에 태극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처럼, 꼭 프랑스 국기가 아니더라도 프랑스 국기처럼 세 가지 색깔을 써서 만든 깃발은 모두 삼색기라는 이름을 갖는다.
세로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하는 나라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외에도 아일랜드(녹색, 흰색, 주황색), 루마니아(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이 있으며, 가로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하는 나라에는 네덜란드(빨간색, 흰색, 파란색)를 필두로 하여 독일(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러시아(흰색, 파란색, 빨간색), 헝가리(빨간색, 흰색, 녹색) 등이 있다.
이탈리아의 삼색기는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담은 프랑스 삼색기가 프랑스 혁명 사상과 함께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나폴레옹의 비호 아래 모데나, 볼로냐, 페라라, 레죠 에밀리아 지역에 걸쳐 세워진 프랑스의 위성 공화국(french client republic, 혹은 자매 공화국 sister republic)인 치스파다나 공화국(Repubblica cispadana, 1796-1797)이 1797년 1월 7일, 레죠 에밀리아에서 네 도시 대표 회담을 가질 때 신생 공화국을 상징하는 국기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때의 삼색기는 빨간색, 흰색, 녹색의 가로 삼색기로 가운데는 문장도 들어있는 것이었다. 이들 삼색은 밀라노 지방의 문장이나 군대 유니폼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전역에서 전통적으로 깃발에 사용해왔던 것이라고 한다.
치스파다나 공화국은 같은 해 7월 트란스파다나 공화국(Repubblica Transpadana)과 합병하여 밀라노를 수도로 하는 치살피나 공화국(Repubblica Cisalpina, 1797-1802)이 된다. 이 새로운 프랑스 위성공화국에서는 세로 삼색기를 채택했으나, 이 시기의 것은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여러 공화국과 왕국이 여러 차례 생성 소멸되는 과정에서, 삼색은 유지하되 모양은 조금씩 변형시킨 국기들이 각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되다가,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Repubblica Italiana)이 출범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양의 국기로 정착되었다.
이탈리아 국가에 얽힌 뒷이야기
이탈리아 국가(國歌)는 <이탈리아인의 노래(Canto degli Italiani)>라고 하며, <마멜리의 찬가(L'Inno di Mamel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혹은 첫 부분을 따서 <이탈리아의 형제들이여(Fratelli d'Italia)>라고도 부른다. 오스트리아에 대항하여 통일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1847년 가을, 제노바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20세의 애국 청년학도 고프레도 마멜리(Goffredo Mameli, 1827-1849)가 이 가사를 썼고, 또 한 사람의 제노바인인 미켈레 노바로(Michele Novaro, 1822-1885)가 두 달 후 토리노에서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형제들이여, 이탈리아가 일어났도다! 스키피오의 투구를 머리에 둘렀도다.” 그런데 노래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첫 구절 ‘이탈리아의 형제들이여’는 원래 ‘이탈리아, 만세(Evviva l'italia)’였으나, 작곡가가 좀 더 강렬한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현재와 같이 가사를 고친 것이라고 한다. 스키피오는 기원전 202년 한니발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로마의 장군으로, 스키피오가 썼던 것과 같은 승리의 투구를 쓰고 오스트리아에 대항한 일전을 준비하자는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다.
노래는 삽시간에 대중 속으로 퍼져 나갔고, 1861년의 이탈리아 통일 직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1862년 런던 세계 박람회를 위해 작곡한 <여러 나라의 찬가(Hymn of the Nations)>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노래로 당시의 국가가 아닌 바로 이 노래를 택하여 영국 국가인 <신이시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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