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시장을 겨냥한 섬유 패션 박람회 개최는 한 나라의 주요 도시가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박물관이라면 생산의 역사가 깊은 섬유 패션 도시에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때로 대도시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더 심화된 개인 학습을 하기 위해 작은 도시를 찾으면서 내 땅의 내음을 맡고 내 땅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박물관은 손님이 있건 없건, 자체 재정으로 유지되건 아니건, 그 존재 자체가 의미 있는 곳이다. 관광 대국 이탈리아에서도 지방의 많은 박물관은 ‘나홀로’ 관람한 경우가 많다. 박물관을 보겠다고 하면 그때야 직원이 닫혀있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밀라노 근교 코모(Como)의 ‘실크 교육 박물관(Museo didattico della Seta)’과 밀라노에서 당일 왕복이 가능한 프라토(Prato)의 ‘텍스타일 박물관(Museo del Tessuto)’도 오후 한 때 혼자서만 박물관을 차지하고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이탈리아 실크의 역사 ‘코모 실크 교육 박물관’
밀라노에서 코모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이른 점심을 먹고 카도르나에서 기차를 탄다. 팸플릿을 보면 이 박물관은 점심시간(12:00~15:00)엔 문을 닫는다고 돼 있으니, 15시 이후에야 박물관 입장이 가능할 모양이다. 그래서 코모 호수를 따라 걷다 ‘인상주의, 상징주의, 전위주의’에 관한 현대미술 전시회장에 들러 모네와 고갱과 드가와 르누아르와 몬드리안의 그림까지 실컷 감상한 후 기차역 두 정거장 쯤 떨어져 있는 박물관까지 이동한다.
지도 한 장 들고 모든 길을 걸어서 찾아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탓에, 한 시간이 넘도록 걸어 ‘코모 실크 교육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5시가 가까워온다. 작은 박물관인지라 폐관 시간까지 한 시간이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자체 연구원들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마중을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나니, 박물관 전시 내용을 상세하게 안내해준다. 이곳에는 가끔 한국인 단체가 찾아온다고 한다.
실크 산지 코모의 역사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비롯한다. 처음부터 지금 현재까지도 실크 원료는 전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원료 생산 이후의 단계, 즉 조사(繰絲, reeling), 연신, 가연, 염색, 제직, 가공 등 모든 작업은 코모에서 직접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1500년대 이전에는 모직 산지였으나, 르네상스 즈음 밀라노에서 견직공들이 코모로 옮겨오면서 도시의 산업이 바뀌었다고 한다. 코모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실크를 생산하는 곳으로 남아있는데, 땅이 평탄하지 않아서 다른 농사를 짓기에는 부적합한 반면 호수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이 실크 산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교육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은 방 하나하나는 실크 생산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현재 전시된 장치나 자료들은 모두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의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은 없지만 지역 산업의 주역으로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사진을 둘러보다보면 ‘이 나라에서도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구나’하는 감동 비슷한 느낌이 살며시 든다. 그러다가 실크 원료를 수입해 온 동양 나라들의 상표를 전시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수 십 개의 상표가 중국어와 일본어인 가운데, 한국어로 된 상표도 딱 하나 있었다. 마치 옛날 담뱃갑 같은 느낌을 주는 상표딱지.
자카드 직기와 함께 진열된 패턴 도안지를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다가, 도안지를 그린 붓과 물감을 보면서 모든 것이 손작업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도안지를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복잡한 패턴을 따라 한 칸 한 칸 다른 색의 물감을 작은 붓에 찍어가며 섬세하게도 그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 고생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 장의 천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했을까! 가끔씩 원시생활박물관이나 고대박물관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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