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의술에 입문하는 허준
허준은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술을 택했다. 그러나 의학 분야는 배우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의술이란 특정 기술을 전수 받은 기술자를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허준에게는 스승이 필요했다.
당시 서울에는 전국에서 명성을 떨치던 명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왜냐하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해야하는 명의들은 정보 습득과 교통편에서 서울이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전 경험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특정 기술을 가르쳤고, 그 중에서 한두명이 수제자가 되어 스승의 유업을 이었다. 그렇다면 허준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었을까?
어렸을 적부터 스승을 따라 의술에 입문해서 수십년동안 온갖 허드렛일과 잡일, 집안 대소사에 참여해야 겨우 제자라는 지위가 부여돼 의술 현장을 참관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의술에 입문하겠노라고 찾아온 열살 남짓한 허준을 누가 선뜻 받아주겠는가? 아마 허준은 고향인 공암(강서구 가양동)과 서울을 부지런히 오갔으나 헛된 발품만 판 셈이 되었을 것이다.
의술 입문의 어려움을 깨닫고 큰 실망과 번민에 휩싸인 허준은 어느날 뜬소문 같은 희소식을 듣게 된다. 동대문 밖에 사는 어떤 이인(異人;도사, 신선)에게 간청하면 신비의 의술을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필자의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명의가 된 사람이 있다. 허준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후세에 알려진 태의 양예수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양예수는 본래 근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천한 출신으로 부모가 모두 노비였다고 한다. 그는 동대문 밖에 살았던 장한웅이란 도사에게서 신비의 의술을 배운 후 내의원에 들어가 어의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술인 의림촬요(醫林撮要)의 서문에 자신의 의술이 장씨 집안의 의술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한웅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장한웅은 화담 서경덕과 더불어 우리 나라 도교의 양대 산맥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그러나 서경덕과 장한웅의 성격과 활동은 너무 달랐다. 서경덕이 뭇사람을 피해 개성 근처 깊은 산골에 화담이란 정자를 짓고 깊은 사색과 명상으로 평생을 살았다면, 장한웅은 서울 동대문 밖에서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민중 속의 도교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병들면 스스로 찾아가 치료를 해주고, 집안에 액운이 들면 잡귀를 쫓아내는 푸닥거리도 하면서 살았다. 고고한 성품의 서경덕과 막걸리 같은 성품의 장한웅, 그리고 선비로서 도교에 심취해있던 북창 정렴. 그들의 철학 사상이 동의보감에 녹아있는 것은 단지 우연일까?
동대문 밖의 이인을 찾아온 10여세의 어린 허준을 맞이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양예수를 키워낸 백발의 장한웅이었을까? 아니면 장한웅의 지시를 따라 허준을 기다리고 있던 제자였을까? 혹시 서경덕의 제자였던 토정 이지함이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인(異人)은 아니었을까? 행적을 밝히지 않는 도인들의 특성 때문에 이 부분은 아직 비밀로 남아있다. 허준도 자신의 책에 의학에 입문시켜준 스승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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