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허준의 참스승은 누구인가?(두번째)
허준은 비록 서출이지만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특히 허준의 큰할머니는 조선 중기 때 유의(儒醫;선비로써 의술을 익힌자)로 이름을 떨쳤던 김안국과 김정국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물론 이 분들은 허준이 태어난 시점을 전후하여 모두 돌아가셨으나, 그들의 후학들이 허준에게 유학과 의술을 가르쳤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전문적인 의술 교육은 아니었지만, 의술의 바탕이 되는 유교 철학을 배운 허준이 나중에 신비의 의술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후에 허준은 자신의 출생신분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의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앞의 글에서 밝혔듯이 허준은 동대문 근처에 살던 신비의 도인을 만났고, 그는 허준의 그릇을 한 눈에 파악한 후 흔쾌히 의술을 가르쳤다. 5-7년 정도 의술을 배운 후 허준은 우리 나라 도인들의 관습에 따라 백두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기도와 명상을 했다. 물론 그 지역에서만 나는 약초를 채취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지역 명의들도 찾아다니며 각종 치료법을 배웠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허준은 지리산 근처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게 된다. 남도지역에서 나는 향토 약초를 이용한 질병치료의 대가였던 유의태는 허준에게 향약(鄕藥;우리나라 약초)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쳤다. 이때부터 허준의 의술 실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유의태는 허준을 불러 뜻밖의 말을 하게 된다. 자신은 불치병에 걸려 있으며, 그 병을 치료하지 않은 까닭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해부하여 의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라는 유언을 남긴다. 왜 유의태는 자신의 몸까지 허준에게 내어주며 해부를 당부했을까?
한의학에서는 해부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물론 2000년 전에는 해부를 통한 상당한 실력의 외과수술 방법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과 수술을 통한 치료법의 한계를 파악한 1500년 전쯤에 한의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외과수술은 필연적으로 완전 회복 불가능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술보다 약초를 이용한 탕약요법이 더욱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인체(몸)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 해부를 통한 실질적인 구조 파악보다 살아있는 몸에서 나타나는 기능이 중시되었다. 즉 피부로 감춰진 몸 속의 장부로부터 생겨나는 작용을 파악하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장상(藏象)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실제 용의 모양과 구조가 중요했지만, 이때부터 인간의 관념 속에 녹아있는 용의 작용과 기능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 것과 같다. 관점(Focus)이 실체로부터 인간의 인식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유의태와 허준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해부를 하라고 했을까? 혹시 허준이 도교의학에 빠져 한의학의 핵심인 장상을 부정하고, 부적과 주문으로만 병을 치료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해부에 관심을 보이던 허준에게 유의태가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향약의 계승과 발전을 부탁했기 때문일까? 아쉽지만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는 해부를 통한 의학 발전의 내용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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