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왕명으로 의서를 쓰다
선조 14년(1581년)에 왕은 신하들에게 뜻밖의 명을 내린다. 송나라 때 저술되어 우리 나라로 전해져 내려온 『찬도맥결(纂圖脈訣)』의 내용을 보완하여 출판하라는 지시였다. 이에 허준은 오래된 이 책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찬도방론맥결집성』이란 새로운 책을 저술하여 왕에게 바쳤다. 물론 왕명으로 의서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의사로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책임질 지도자로 육성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진찰에 있어서 필수적인 진맥(診脈)을 그림으로 설명하였는데, 여기에는 재미난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
원래 이 책은 궁궐에서만 소장하고 있는 비서(秘書)였다.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던 어떤 관리가 규장각을 드나들며 이 책을 보고는 재미 삼아 조금씩 베끼거나 암기하곤 했다. 어느 날 그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진국태라는 순진한 총각을 만나 『찬도맥결』의 내용을 소일거리 삼아 조금씩 가르쳤다. 진국태도 홀어머니의 병을 스스로 치료하고자 열심히 배웠는데, 내용을 완전히 암기했을 무렵 관리는 다시 한양으로 떠났다. 이 후에 진국태는 제주도에서 진맥의 명의가 되었지만, 관리는 그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느 날 진국태의 소문을 들은 한양의 양반이 그의 노모를 치료해주기를 요청했고, 그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서 몇 달 후 한양에 도착했다. 남루한 그의 행색을 본 머슴들이 “저놈이 무슨 명의냐? 우리가 저 촌놈을 한번 놀려주자”하여 괜한 시비를 걸어 문안으로 못들어 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큰 마님의 질병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우리 집 종년의 병을 알아 맞추어 보라”고 했다.
잠시 후 대문 틈 사이로 빠져 나온 무명실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진맥하던 진국태는 잠시 후 껄껄 웃으며 “이것은 사람의 맥이 아니고, 매화나무의 맥이요. 장난은 그만하고 나를 집안으로 어서 들어가게 해 주시오.”라고 말했다. 마당에 심어져있던 매화나무에 실을 매어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머슴들은 크게 놀랐고, 서둘러 그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소문만 듣고 그를 초대한 대감도 막상 초라한 그를 보고는 실망하여 한참동안 환자의 진찰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진국태는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환자를 직접 보여주지 마시고, 환자의 손목에 실을 매어 방문 바깥으로 내어주소서”라고 했다.
이 말에 대감은 노모의 병치레를 맡은 여종에게 무명실을 방문 바깥으로 내도록 했다. 잠시 후 실을 잡고 한참동안 진맥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너무 늦었습니다. 마님의 맥은 사람의 맥이 아니라 마치 청동 화로의 맥과 같기 때문에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감이 크게 상심하여 홀로 방안으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여종이 장난삼아 실을 환자의 손목에 매지 않고 노모 근처에 있던 화로 손잡이에 매어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실을 풀어서 환자의 손목에 맨 후에 다시 진맥을 의뢰하자, 그는 한참동안 진맥한 후에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의 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기혈(氣血)을 보하고 심장의 열을 풀면 치료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의술에 깊은 신뢰를 갖게된 대감은 그에게 노모의 치료를 맡겼고, 얼마 후 노모는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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