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과 동의보감의 비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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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5 오후 2:09:37

9. 정치적 고난의 시작 왕명에 의해 『찬도방론맥결집성』이란 진맥서를 쓴 허준의 자부심은 대단했던 것 같다.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허준은 매우 똑똑하고 재기가 넘치며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또한 의학서 이 외에도 각종 경서와 사서(四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도 능통했다.”고 쓰여있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왕명으로 책을 썼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양반들의 시기에 찬 눈길을 받기 시작한다. 허준은 선조 23년(1590년)에 천연두(마마)에 걸려 죽어가는 왕자(임해군 또는 광해군)를 치료하게 된다. 물론 어의 양예수를 비롯한 내의들이 필사적으로 치료에 매달렸으나, 왕자의 증세는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이에 왕은 허준에게 왕자의 천연두 치료를 맡기게 되고, 지극 정성을 기울인 허준의 치료에 왕자는 완쾌하게 된다. 선조는 왕자 치료에 공을 세운 허준에게 가자(加資)라는 품계를 내려 보답을 하려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집중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해를 넘겨 선조 24년 1월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허준의 가자 품계는 없었던 일로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가자라는 품계는 정식 벼슬이 아니었다. 다만 조정에 큰 공로를 세운 신하들에게 왕이 하사하는 일종의 명예직으로 정식 벼슬로 치면 정 3품 당상관에 버금 되는 품계였다. 당상관은 지금의 중앙 공무원 국장급에 해당되지만, 문관일 경우에는 정책을 입안 할 수 있는 자리였고, 무관의 경우에는 연대장급으로 특정 지역의 군권을 행사하는 지위였다. 그러나 기술직 관원의 가자 품계는 그저 옷의 색깔, 집안에 둘 수 있는 노비의 숫자, 갓의 크기와 색깔 등이 동급의 양반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지위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양반들은 허준에 대한 가자 품계를 집중적으로 반대했을까? 양반들이 당상관에 오르려면 조정에 큰 공로를 세우거나, 치열한 정치적 역경을 극복한 후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양반들이 허준 같은 기술직 관원이 기술 하나만 믿고 당상관에 버금가는 가자 품계를 받는 것을 매우 탐탁지 않게 여겼다. 선조 24년(1591년) 1월 3일에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문의 일부를 보자. “(중략) 왕자가 병이 있어 허준이 약을 써서 치료한 것은 의관(醫官)으로서의 직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당상관의 가자를 제수하였으니 양전(兩殿)을 시약(侍藥)한 공과 혼동되어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작상(爵賞)의 참람됨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속히 개청하소서. 장흥 부사(長興府使) 장의현(張義賢)은 성질이 본래 느려서 자리만 지키는 자이니 파직시키소서. (중략)” 결국 이 일은 허준에 대한 양반들의 정치적 견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일은 양예수도 겪은 바 있으나, 허준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겪게 된다. 허준을 총애하는 왕과 뛰어난 의술을 지닌 허준, 그리고 둘의 관계를 시기하는 양반 관리들의 비난은 허준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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