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조의 죽음과 뒤바뀐 운명
선조가 죽은 1608년(선조41년)을 즈음하여 허준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시중에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전량 수입되던 감초(甘草)를 비롯한 수입약재의 독점권을 지닌 허준이 특정 약재상과 결탁하여 막대한 치부를 하고 있다는 내용부터 내의원 의녀들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대부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조가 완쾌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받는 정치적 모함이었기에 허준은 그 자체를 모두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재임 41년만에 선조가 죽자 조정은 큰 혼란에 빠졌다. 허준은 어의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선조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고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조정의 관심은 허준에게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조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나이로 볼 때 오랜 시간동안 세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왜란을 극복했던 광해군이 당연히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광해군은 적자가 아니라 서자였고,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영창대군이란 적자가 있었다. 특히 선조가 죽으면서 영의정 유영경에게 왕위를 광해군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영의정은 이 편지를 숨기고 인목대비를 찾아가서 영창대군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며칠동안 고민하던 인목대비는 오랫동안 세자의 직분을 지킨 광해군에게 왕위를 계승시킨다는 교시를 내려 혼란은 종식되었다. 그러나 왕이 된 광해군은 자신의 왕권 보호를 위해 유영경을 비롯한 영창대군 쪽의 신하들을 모두 관직에서 추방하고, 일부는 사약을 내려 죽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영창대군마져 죽이는 정치적 폭거를 자행한다. 물론 이 일의 배후에는 영창대군을 추종하는 소북파가 있었다.
그들은 명나라에 비밀서신을 보내 선조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광해군이 독살했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이에 명나라에서는 무덤 속의 선조를 직접 검시하겠다고 현장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의 뒤안길에서 허준은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왕권 수호에 열중하던 광해군은 허준에게 우선 문외출송(門外黜送)이란 형벌을 내린다. 이는 도성에 들어올 수 없는 형벌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허준에게는 너무 가벼운 형벌이었다. 이후 소북파가 제거되고 대북파가 득세하여 정치적 안정이 도모될 무렵 허준에게 중도부처(中途付處)의 형을 추가로 내리는 것으로 책임문책이 끝냈다. 이는 일정한 거처에서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형벌로 허준은 소북파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허준은 죽은 선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의학서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저술은 어의의 역할을 하면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 자체가 매우 더디게 이루어졌지만, 벌을 받고 있는 입장은 오히려 저술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간혹 대북파 신하들의 도움으로 허준은 도성을 출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저술작업에 필요한 자료가 모두 궁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을 들은 광해군은 허준에 대한 형벌을 중지하도록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편찬된 것이 바로 『동의보감』으로, 이때는 광해군 2년(1610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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