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수의 7가지 대화 원칙
프롤로그
그는 외딴 마을의 끝자락에 있는 허름한 동네의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차가운 건초와 당나귀 땀에 전 낡은 담요로 만든 요람 주위를 염소와 양, 암탉 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목수일을 가르쳤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낡은 탁자를 수리하거나 의자를 만드는 노련한 목수였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세 시간 거리에 있는 로마인들의 도시에서 돌집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는 못이 박힌 손으로 좋은 물건들을 만들었고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서 튀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용했던 재료만큼이나 평범했던 그는 목수를 아버지로 둔 나사렛 사람에 불과했다.
바로 이 평범한 목수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인류의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 가짜 보석을 깨버리듯 그가 당시의 관습을 부정하자 그것을 신봉하던 지식인들은 분노에 떨었다. 그는 반역자들과 삶을 찬미하고 부랑자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가 전하는 말은 산기슭과 사막에까지 메아리쳤고 마른 들판에 번지는 불길처럼 번져갔다.
그가 가는 곳마다 메시지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옷자락을 만져보려고 달려들었고, 사기꾼이나 창녀들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천하고 떳떳하지 못한 직업을 버렸고, 어부들은 배를 버리고 그를 따랐다.
그가 바로 예수다. 그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이고 길 잃은 이들과 눈먼 자들을 이끄는 목자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표현했다. 무신론자들까지도 마음을 빼앗길 만큼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비록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태어난 곳에서 100마일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했던 예수였지만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와 토론과 배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예수와 그가 전한 메시지를 그의 커뮤니케이션, 즉 말과 질문, 수단 그리고 그가 선택한 접근방식을 통해 경험했다. 즉, 예수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매개체는 그의 메시지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예수의 7가지 대화 원칙을 살펴보자.
첫 번째 대화 원칙; 관심
예수는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사건에 자신의 관심을 돌렸다. 그의 관심은 감정이 이입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느끼는 것, 고통까지도 함께 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성공 여부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었는가에 달려 있다. 침묵은 관심을 나타내는 첫 번째 단계이자 실체를 이해하는 ‘필수 조건’이다. 대화를 나눌 땐 자신의 생각을 끌어들이지 말고 필요할 때만 말해야 한다. 진정한 관심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배려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진정한 배려란 자신의 말만 하기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대방을 걱정해 주는 차원을 넘어 그 사람의 마음 속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대화 원칙; 관계 모색
예수는 화려한 미사여구로 모호한 교리를 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으며, 냄새 맡을 수 있는 분명한 말들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빵 굽는 효소, 밀밭, 양과 염소, 무너지는 탑, 짠맛을 내는 소금, 반짝이는 빛을 비유로 들었다. 지식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문맹자들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이야기를 항상 들려주었다.
관계 모색을 위한 예수의 접근방식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그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야기를 사용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절한 사마리아인’, ‘돌아온 탕자’와 같은 것들이다. 두 번째, 예수가 전하는 이야기는 위대하고 방대했지만 글을 모르는 노동자도 소화할 수 있도록 진리를 짧게 나누어 전달했다. 바로 간단명료함이었다. 세 번째, 예수가 전달한 이야기 대부분이 사람들의 실생활에서 나왔다. 네 번째, 개념적인 말들을 모두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어서 예수가 말한 모든 것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세 번째 대화 원칙; 질문하기
‘주장’은 융통성이 없고 쉽게 반박당하며,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토론에서는 항상 무시된다. 주장은 부탁하는 것이라기보다 청중에게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주장은 청중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대신 그 일을 직접 하려 든다.
반대로 예수의 질문들은 청중으로 하여금 발견해 내는 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진리를 얻게 한다. 그는 어떤 생각이 강요되면 그것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가지 예수의 질문을 보자.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왜 나를 선한 목자라 부르느냐?’, ‘길에서 무엇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었느냐?’ 등 모두 직설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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