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충장로. 오후 7시- 한창 쇼핑객들로 붐빌 시간인 데도 겨우 두세집 걸러 한집 꼴로 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즌 초도 아닌데 아예 문을 닫고 수리 중인 가게도 눈에 띈다. 불경기라는 말이 체감된다.
같은 시간, 「보배로운 나라」 ‘면 코너’는 후드티셔츠를 고르려는 중·고등 학생 고객들로 붐빈다. 「보배로운 나라」가 위치한 곳은 충장로 중심통에서는 한쪽으로 비켜있는 옛 가든백화점 후문 옆이다. 「보배로운 나라」는 동대문 시장서 물건을 떼다 판매하는 보세점. 3개층 240평짜리 매장에는 신발, 화장품, 가방, 액세서리(1층), 여성용 정장(2층), 여성 캐주얼의류(3층) 등을 판매한다. 점퍼, 티셔츠 등을 판매하는 ‘면코너‘는 3층에 자리잡고 있다.
이 ‘면 코너’는 로고 티셔츠, 후드 티셔츠, 피케 티셔츠, 점퍼 등을 팔아 지난 9월 9천96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3층의 매장면적은 80여평. 이 매장을 니트, 청바지 코너와 함께 나눠쓰고 있으니 면코너가 차지하는 면적은 30평 남짓.
노루목 1층 매장도 썰렁한 판에 중심 상권에서 저만큼 돌아서있는 점포. 더구나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 한 귀퉁이 매장에서 1억원의 매출을 올린 비결은 무엇일까?
“1등 상품들로 구색을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면코너의 팀장을 맡고 있는 정금숙씨는 알 듯 모를 듯한 선문답 같은 답을 한다. “다른 집에는 30여 가지 상품을 갖춰 놓고 팔지만 우리 매장에는 5∼6가지만 가지고 장사한다. 경쟁점포 사람들은 어떻게 이 구색을 가지고 장사 하냐고 의아해 하지만 고객들은 예쁜옷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고객들이 예쁘다고 평가하는 옷, 사고 싶어하는 옷이 1등 상품이고 우리는 1등 상품이 많다. 「보배로운 나라」 3층에 가면 예쁘고 입을만한 티셔츠가 많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 같다. 주 타겟인 10대∼20대초반은 물론이고 30대 아줌마, 초등학생들까지 우리 가게를 찾는다. 계산대에 늘어선 줄로 출입구가 막혀버리는 일도 있다.”
“고객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상품’만 있으면 되는 시대도, ‘좋은 자리에 번듯한 매장’이 경쟁력이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고객을 하늘로 떠받들어야 번영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충장로에 가게만 있으면 걸레를 갖다놓아도 팔린다는 때도 있었다. 번듯한 가게를 가진 사람이 브랜드를 골라가며 떵떵거리던 시절의 이야기는 판매할 공간이 부족한 상권시대의 신화다. 고객의 시대에는 ‘자리’가 중요하지 않다. 1층보다 2층이, 2층보다 3층의 판매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상권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보배로운 나라」 정형영 사장의 이야기다.
“고객의 시대에는 매출이 큰 기업보다는 고객에게 사랑 받는 기업이 좋은 회사가 된다. 고객의 시대에는 고객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가진 회사가 경쟁력 있는 회사고, 전문점은 고객을 받들기에 가장 적합한 유통형태다. 「보배로운 나라」는 고객의 시대를 맞는 가장 경쟁력 있는 유통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사장은 그가 말하는 상권시대에 「카스피」「지오지아」「주얼리아」「체크」등 10여개의 브랜드 대리점과 보세 매장을 운영하며 광주 충장로 상권을 호령했다.
그가 운영하던 대리점 매출은 전국 1∼2위를 다퉜다. 잘나가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지금 운영하고 있던 240평짜리 매장. IMF를 예측하지 못하고 과다한 투자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매출은 떨어지는 데 갚아야할 돈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240평짜리 매장 1개를 남기고 나머지 매장을 모두 정리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바로 IMF가 나에게 고객의 시대를 준비하게 해준 채찍이 되었다.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상권시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IMF이후 3년간 정사장은 절치부심의 자세로 고객시대를 맞을 논리와 시스템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실천했다.
황상윤 기자
hsy@fashioninsight.com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