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가로수길. 한때는 화랑이 즐비했던 이 거리에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렇게 모여든 디자이너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어느새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 거리를 패션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명칭부터 바꿔야 해요. 패션 거리로!"
취재 중에 만난 한 젊은 디자이너가 내뱉은 이 말은 취재 내내 때로는 필자의 가슴을 답답하게도 하고, 때로는 흥분하게도 했다. 이 말을 한 디자이너는 ‘론(lone)'이라는 브랜드로 얼마 전 뉴웨이브인서울(NWS)에 신입회원으로 가입한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 ‘조용하면서도 젊은 디자이너들의 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이 곳 가로수길을 자신의 첫 데뷔 숍으로 결정했다'는 그의 생각은 취재 결과 이 거리에 자리잡은 다른 디자이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신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에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패션 거리가 많다. 명동, 압구정동, 이대 입구, 성신여대 입구, 이태원, 문정동, 종로... 그러나 대부분 재래시장에서 사입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이나 내셔널 브랜드의 할인 매장이 대부분이다. 그 어디에서도 패션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패션 거리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저렴한 물건과 수많은 인파 속에서 패션문화는 이미 질식(?)해 버린 듯 하다.
70년대. 딸이 여고생에서 여대생이 되면 부모들은 딸의 손을 잡고 명동에 나와 기념으로 맞춤복을 선물할 정도로 명동은 한 때 패션과 문화가 어우러진 거리였다. 진태옥, 이신우, 박윤수, 루비나, 지춘희, 이상봉 등 많은 우리 나라의 기성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을 명동에서 시작할 정도로 명동은 패션 디자이너의 요람이자 패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현재 명동에서는 그 옛날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다. 10대를 타겟으로 한, 영 캐주얼 브랜드와 노점상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갈 데가 없다. 수입 브랜드와 기성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이미 점령한 대표적인 디자이너 거리인 청담동에는 건물 임대료가 너무 비싸 입성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압구정동에서는 보세점에 밀리고 문정동에서는 할인점에게 밀린다.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고 패션 거리를 떠돌고 있다. 소위 ‘패션계의 노숙자'인 셈이다.
그나마 동대문시장 밀리오레 매장 3층에 가면 자기 이름을 건 몇 명의 디자이너들이 있지만 디자이너 매장이라고 하기에는 양이나 질에서 아직은 함량 미달이다. 솔직히 동대문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 대부분은 패션 거리 진출이라는 커다란 꿈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주위 여건은 그리 만만치 않다. 몇 년 안에 스타 디자이너 배출을 장담했던 밀리오레 3층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부상하고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준다. 최근에는 잡지에도 소개되고, 입 소문도 서서히 나는 바람에 천편일률적인 기성복과 재래시장에 지친 패션 리더들이 야금야금 이 거리를 찾고 있다.
6년 전 정도만 해도 이 곳은 ‘화랑 거리'였다. 공식적인 명칭이 화랑거리는 아니지만 가로수길을 따라 빼곡히 화랑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이 거리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금 살아 남은 화랑은 ‘예화랑', ‘리 갤러리',‘두인 화랑' 정도가 고작이다.
기자의 집이 가로길 옆(?)이라 이 곳은 기자의 놀이터이자 쉼터다. 헌데 요즘 이곳에 새로운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부쩍 젊은 디자이너들이 속속들이 찾아 들고 있는 것이다. 퀄리티도 만만치 않다. 국내파 디자이너보다는 해외파가 많고, 국내파라고 하더라도 내셔널 브랜드에게 다년간의 노하우를 쌓은 경력자들이 대다수다. 특징이라면 국내 디자인 컨테스트인 중앙디자인 컨테스트를 통해 배출된 중앙디자인그룹 디자이너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바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무지개 빛'일까?
제2의 오브제 신화를 꿈꾸는 가로수길 디자이너들
디자이너 강진영이 ‘오브제'를 열어 지금처럼 대성공을 이룬 이후에 그 뒤를 이을 디자이너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경제적인 성공을 뒤로 한다면야 우리에게 알려진 디자이너는 꽤 여러 명이 있다. 심상보나 임선옥 그리고 양복형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눈에 띄는 상업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보금자리삼아 커온 디자이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아쉽게도 임선옥 뿐이지만...
가장 최근 가로수길의 식구가 된 디자이너는 1개월 전에 오픈한 중앙디자인그룹(JDG)의 멤버인 박영미. 얼마 전, ‘한지(HANZI)'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SFAA 신인 디자이너로 경복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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