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벨기에 패션을 주목하게 만드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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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오후 5:46:26

매년 3월과 8월, 세계 패션계는 컬렉션 열기로 뜨겁다. 디자이너들은 다음 시즌의 트렌드를 반영한 옷을 미리 선보여 바이어와 패션 기자들의 심판(?)을 받는다. 컬렉션을 통해 후한 점수를 받는 디자이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디자이너도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컬렉션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스타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세계 패션은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 파리. 최근 들어 뉴욕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오랜 전통과 관록을 자랑하는 파리 컬렉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셈이다. 어쨌든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은 ‘꿈의 무대'라 불리는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물론 컬렉션에만 참여한다고 해서 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파리 컬렉션을 통해 스타로 부상한 디자이너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디자이너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신우, 이영희, 진태옥, 김정아, 김정주, 장광효, 홍은주, 노승은 등을 비롯해 90년대 초반부터 많은 디자이너들이 파리 컬렉션을 노크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단지 운이 없었을까? 10년을 내다본 벨기에 패션의 저력 일반적으로 ‘안트워프 6인방'이나 ‘벨기에 5인방' 같은 닉네임은 90년대 파리 패션은 물론 세계 패션의 중요한 화두였다. ‘안트워프 6인방'은 80년대 초반,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원을 졸업하여 80년대 후반부터 차례로 파리 컬렉션에 데뷔해 일약 90년대 패션의 중심으로 떠오른 벨기에 디자이너 6인을 일컫는 말이고 ‘벨기에 5인방'은 안트워프 6인방 중에서 두명이 빠지고 마틴 마지엘라가 가세를 해 ‘벨기에 5인방'이 되었다. ‘안트워프 5인방'이 되지 않은 이유는 마틴 마지엘라가 안트워프 왕립 학원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일본 패션과 벨기에 패션은 ‘지역성'이 가미된 아방가르드로 파리 패션계를 강타했다. 물론 처음에는 일본 패션이 앞섰고 스포트라이트도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일본의 파리 1세대 디자이너들(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은 지속적인 변신에 실패했고 그 뒤를 잇는 디자이너들도 없었다. 기모노 패턴, 주름, 오리가미(일본식 종이 접기) 등에서 차용된 색감과 디테일 등 재패니즘으로 규정지어진 그 특징들은 하나의 특징으로만 머물러 있는 뿐 더 이상 아방가르드가 아니라는 지적이 프레스로부터 나왔다. 이렇게 일본 패션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사이 벨기에 패션은 정의나 규정을 거부한 ‘혁명'에 가까운 변신을 거듭했다. 벨기에는 지역적으로 네덜란드, 독일, 룩셈브루크, 파리와 국경을 접하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을 마주하는 유럽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지리적인 여건과 끊임없이 이어졌던 외세 침략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문화적, 인종적(냉정한 게르만의 피와 정열적인 라틴의 혼합)으로 서유럽의 다양한 특성이 융합될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독자적 생존을 위해 계속됐던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은 독자성을 잃지 않는 벨기에 문화의 기본 성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바로크 시대를 문화적 황금기로 보냈던 벨기에가 플랑드르 미술의 중심지였으며 루벤스 하우스를 비롯한 중세적 유산이 가득한 도시 ‘안트워프'를 거점으로 벨기에 패션을 발전시킨 배경에는 이러한 전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다양한 역사적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끝없는 영감과 추진력은 파리 패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벨기에 패션이 국제 무대에 서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메리 피조트다. 30여년 전 ‘안트워프 로열 아카데미(Antwerp Royal Academy)'에 패션 분과를 창립했던 그녀는 벨기에를 패션의 중심지 파리처럼 만들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명의 여성인 패션 코디네이터 헬렌 라프지스트(Helen Ravjst). 그녀는 70년대 후반 벨기에 정부가 패션 분야에 제정지원과 창의력을 심어주기 위해 ITCB를 설립하고 10년 계획아래 텍스타일 플랜을 시작할 때 합류를 했다. 그녀는 텍스타일 발전 계획과 더불어 ‘This is Belgian'이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패션'과 ‘벨지언'의 최초 조합이었으며 벨기에 패션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황금 물레상(Golden Spindle)을 제정한 그녀는 재능 있는 벨기에 디자이너들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황금 물레상은 장 폴 고티에, 로메오 질리 등을 심사위원으로 초빙하여 국제적인 콘테스트로 주목 받기 시작했고 수상자에게는 개인 컬렉션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앤 드묄르미스터(82년)를 첫 수상자로 하여 더크 반 세인(83년), 더크 비켐버그(85년), 베로니크 브로이(89년) 등이 그 영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왜 벨기에 패션인가? 그럼 벨기에의 디자이너가 연이어 파리 컬렉션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80년대 초 벨기에

글/ 유재부(패션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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