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비아 콘도티, 파리의 포부르 생토노레,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뉴욕 매디슨 애버뉴 등은 세계 최고 브랜드들이 밀집한 패션 거리들이다. 굳이 우리 나라에서 위와 같은 개념의 패션 거리를 찾는다면 두말이 필요 없이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정도가 될 것이다.
청담 사거리에서 갤러리아 백화점 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명품 브랜드 거리에는 발리, 프라다, 돌체 & 가바나, 미소니, 질 샌더, 캘빈 클라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구찌 등의 유명 해외 브랜드 단독 매장들이 들어서 있고 이 거리의 끝에 있는 갤러리아 명품관은 값비싼 수입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있다.
수입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전까지 청담동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거리였다. 그러다보니 주 고객은 30~40대의 주부들이 대부분이었고 이 때까지만 해도 소위 노블리안이라 불리는 오렌지족들은 압구정동에서 그 자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압구정동 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화되자 오렌지족들은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홍대 주변과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위 강북 사람들이 강남으로 많이 오면서 물이 흐려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청담동 거리에는 색다른 기류가 형성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럼 청담동 문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압구정동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이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청담동 문화를 이야기하려면 압구정동을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압구정동에는 더 이상 바람이 불지 않는다
강남구 압구정동.
이곳 만큼 지난 10여 년 동안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지명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규모의 고급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압구정동과 고급주택가인 청담동은 경제적인 풍요를 상징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류층의 무분별한 사치풍조와 자기과시 그리고 부자집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성관념이 사회 문제화되곤 했다.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한 시대의 부정적인 사회풍속을 반영하는 신조어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압구정동이라는 이름 뒤에는 ‘사치와 향락의 거리', ‘소비특별시', ‘정체성이 없는 거리' ‘가진 자들만의 거리' 등등의 비판적인 형용사가 따라붙었다.
헤이즐넛 커피와 외국산 맥주, 양담배로 대표되는 이른바 오렌지족의 소비문화가 파급된 것도 이 압구정동이었다. 이처럼 압구정동은 빈부의 격차, 상류층의 방만한 사치와 방종, 젊은이들의 향락과 같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부유층이 밀집된 탓에 현대백화점 맞은편 거리에는 증권사, 은행 등 국내의 웬만한 금융기관은 지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청담동에는 수입 브랜드만을 취급하는 백화점과 해외 유명 브랜드의 로드샵이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로데오 거리는 미국의 부촌 비버리힐스의 세계적인 패션 거리 <로데오 드라이브>를 본뜬 것으로 그 동안 신세대들이 많이 찾는 유행의 첨단 공간이었다. 96년 '패션의 거리'로 지정된 갤러리아백화점 앞은 수입 및 국내 유명 디자이너브랜드 매장이 빛을 발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이 거리에, 지금은 지갑이 얇은 신세대 학생층을 겨냥한 보세 옷 가게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포장마차, 갈비집 같은 비 신세대풍 업종들이 로데오 인근 주택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때 오렌지족의 거리로 유명했던 로데오거리가 버블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동반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성수대교 붕괴와 IMF 직격탄을 맞아 완전히 고사 위기에 몰린 상태다. 이에 따라 유명상표의 패션 상점들이 수놓았던 이 거리에 보세 옷 가게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즉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이라는 속담처럼 유명상표의 패션 상점들이 IMF 한파로 된서리를 맞고 물러난 자리에 보세 의류점, 화장품 할인점, 액세서리점, 캐릭터 샵 등 중저가 제품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속속 들어선 것이다.
압구정동이 경기가 안 좋아지자 ‘강남의 충무로'로 자리잡은 도산대로와 청담동 일대에 20~30대 전문직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의상실과 까페 들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압구정동의 대중화(?)에 힘입어 청담동 주택가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곳에 주차하는 고급차들의 행렬과 그 차를 주차하는 주차맨들의 날렵한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청담동 문화의 냄새를 맡게된다.
즉 소비는 압구정동에서, 잠은 청담동에서라는 공식이 이제는 청담동안에서 모두 해결을 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청담동 고급주택가를 허물고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원룸형 빌라를 짓는 모습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업그레이드 오렌지족인 ‘황금족’은
청담동의 주류가
글/유재부(패션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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