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인격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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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4 오후 2:59:43

색은 섞일수록 탁해진다. 탁한색 그 자체만 보면 별로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지만 오래도록 보면 원색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섞이지 않은 색보다는 섞여서 만들어지는 색은 그 수가 훨씬 많다. 따라서 섞여서 만들어진 색깔들이 펼치는 색의 세상은 그렇지 않은 색들의 세상에 비할 바 없이 크고도 넓다.


청자가 청색이라고?  
혹시 고려청자를 직접 본 일이 있는지? 5천 년 역사를 우리는 자랑하고 살지만 막상 물 건너 사람들에게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을 증명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날리는 국내의 기업들이 될 수 있으면 국적을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나마 세계의 많은 안목들을 하나로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템이 바로 고려청자다.

청자는 다른 것보다 색깔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 때문에 특히 색을 공부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박물관에 직접 가서 이 유명한 청자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입과 귀가 닳도록 듣고 말하던 청자가 실은 청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청자에서 청초한 파란색의 흔적은 발견할 수가 없다. 정확하게 색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대략 청자의 색을 간추려보면 <그림 1>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청색이라기보다는 녹색에 가깝고 칙칙해(?) 보이는 녹색 비슷한 색만 청자의 표피를 감싸고 있을 따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청색도 아닌 색이 버젓이 청색이라는 호칭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당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천하의 신비로운 색’이라고 자자한 칭찬을 세계로부터 들어왔다는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색도 아닌, 칙칙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색이 왜 그런 시대를 초월하는 칭송을 듣게 되는 것일까?


오묘한 색 
디지털 데이터로 된 색의 면을 보아선 잘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청자를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겉으로는 칙칙하고 답답해 보이는 색들이 사람들의 눈을 묘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눈에는 정말 별 것 아닌 색으로 보이는데 보면 볼수록 청자의 색들은 우리의 눈에 이상한 마술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이라고 단정을 내렸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면 볼수록 파란색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색에도 영혼이 있는 것인지, 이상하게 파란색의 기분이 가시지를 않고 갈수록 강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보면 볼수록 파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도 같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란색도 있는 것 같고 검은색도 들어있는 것 같고 흰색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빨간색도 숨어 있는 것 같다. 파란색이면 파란색, 노란색이면 노란색이라고 하면 될 것인데 청자의 색은 뭐라고 한마디로 말 못할 복잡한 색의 지층 같은 게 있어서 신비롭다는 말 외에는 어떤 단정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청자의 색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어떤 쪽으로도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는 바로 이런 오묘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유명한 것과 동일한 조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자의 색은 어떻게 그런 오묘함을 지닐 수 있었을까?

색은 섞인다
지금까지 우리는 색을 이미 만들어진, 혹은 존재하는 것 으로 일단 받아들이고 색과 색이 서로 어우러지는 부분을 여러 가지 기준에 입각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색은 파란색이나 빨간색처럼 이미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색들이 서로 섞이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섞여서 만들어지는 색으로 시선을 옮기면 색의 문제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색들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게 되고 색의 문제는 보다 복잡해진다. 색이 섞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들이 실상은 불과 몇십 개밖에 안 되는 원소들의 조합인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가 있다.

청자의 색은 분명히 하나인데, 그 속에서 수많은 색을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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