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여성사를 바꾼 불멸의 연인 - 코코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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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앙리 지델 지음/이원희 옮김

2007-01-22 오후 4:40:34

20세기 최고의 패션 혁명가로 군림하면서 ‘내겐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이 가장 싫다'고 말하던 코코 샤넬의 삶은 실제로 고독과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제1장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시절 1883년 8월 19일, 가브리엘 샤넬이 태어났다. 네 살 때 쿠르피에르에 온 가브리엘은 소꿉동무와도 같은 언니 쥘리아와 남동생 알퐁스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어머니 잔은 1895년 2월 남편의 무관심과 방랑벽에 시달리다 폐병으로 죽는다. 자매들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성장한다. 1902년, 가브리엘과 그녀의 단짝 아드리엔은 마침내 노트르담 기숙사를 떠났다.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물랭은 기병 10사단의 여러 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도시였다. 머리를 땋아 까마귀 날개 모양으로 멋지게 틀어올린 머리 모양, 감정에 따라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그 강렬하면서 수줍은 눈빛을 가진 가브리엘의 미모는 많은 군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은 자신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음악과 쇼까지 즐길 수 있는 뮤직홀 중 하나인 로통드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그녀는 가수들이 쉬는 막간에 마스코트 가수로 노래를 불러서 커다란 인기를 얻는다. 가브리엘의 팬들인 군인들이 앙코르를 청하면서 그녀가 노래를 다시 부를 때까지 발음이 같은 Koko와 Coco의 두 음절을 요란하게 외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그녀는 코코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평생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만 그녀는 이 이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코코의 명성은 주인 부부의 귀에 들어갔고 가브리엘과 아드리엔은 해고당했다. 제2장 디자이너로 입성하다 1909년 봄, 가브리엘은 파리에 도착했다. 모자 디자인에 한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전문 직업인의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그녀는 르위스 상점의 재봉 주임으로 일하고 있는 뤼시엔 라바테를 끌어들였다. 당시에 유행했던 지나치게 장식이 많은 모자와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이라는 것 때문에 손님이 점점 늘어났다. 1910년 가을 카펠의 도움으로 캉봉 거리 21번지 2층에 있는 커다란 집을 빌려 작업실을 만들고 문에는 샤넬 패션이라고 씌어진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카펠과의 행복한 나날은 계속되었다. 1913년 가브리엘은 도빌의 고급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공토비롱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공토비롱 거리의 상점에는 그녀가 창안한 세일러복, 기수의 조끼, 얇은 재킷, 마직물 스커트, 실크 블라우스, 도빌의 약간 서늘한 저녁에 어울리는 외투, 장신구 등이 진열되었다. 그렇게 해서 가브리엘은 당시 오랫동안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의상에 손을 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잔 랑뱅처럼 패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이 전쟁은 그녀를 출세 가도를 달리게 한다. 도빌로 몰려든 부르주아와 귀족 피난민들이 유일하게 문을 닫지 않고 있던 그녀의 상점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신뢰하는 점원에게 도빌의 상점을 맡긴 가브리엘은 다시 캉봉 거리의 상점에 전력을 기울였고 60명이나 되는 재봉사들을 데리고도 쇄도하는 주문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캉봉 거리의 상점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파리에서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좀더 단순한 디자인, 길이를 대폭 줄인 스커트, 속옷감으로만 사용되던 저지를 겉감으로 활용한 편물 선택 등 화려한 장식만을 좇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실루엣과 라인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디자인은 점점 자유분방해졌다. 이 모든 혁신은 1914년부터 여성 고객들이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생활과 일치했다. 제3장. 성공 뒤의 고독 1920년 9월 비아리츠로 휴가를 떠난 가브리엘은 거기서 러시아 황제의 조카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을 만났다. 샤넬의 신제품들은 모든 면에서 러시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드미트리의 주선으로 향수 전문가 에르네스트 보를 만나 ‘샤넬 N˚5’를 만들게 되었다. 기존의 식물이나 동물에서 채취한 천연향과는 달리 알데히드라는 합성물을 혼합한 ‘샤넬 N˚5’는 색다른 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품질에서도 우수했고, 병 속에 담긴 금빛 액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평행육면체의 단순한 유리병 모양 또한 혁신적이었다. 또한 ‘수리르 다브릴(4월의 미소)’, ‘데지르 프랭시에(봄의 욕망)’ 등과 시적인 향수 이름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에 자신의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하는 ’5'를 내세운 것도 획기적이었다. 1932년 11월 호화로운 다이아몬드 전시회가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 29번지의 호텔에서 열렸다. 그 전시회를 개최한 것은 진짜 보석을 맹렬히 반대하던 가브리엘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가 다이아몬드 전시회

최종복/북코스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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