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젬 스톤
보헤미안 룩이 거리를 물들이고 있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나 층층의 티어드 스커트와 카프탄 블라우스를 볼 수 있다. 또 반다나를 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목걸이를 휘감은 사람들도 쉽게 마주친다. 그야말로 탬버린이나 기타를 안들었다 뿐이지, 패션만으론 영락없는 집시이다.
패션에서 집시가 부각된 것은 복식사를 통해 여러 번 발견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미 1940년대에 한번의 보헤미안 룩이 훑고 지나간 바 있다. 당시는 ‘블랙 보헤미안(Black Bohemian)’이라 하여, 나름대로 반항적 기질을 드러내는 의상이 인기를 모았다. 그 30년 뒤인 1970년대에는 폭발적으로 붐을 이룬다. 이것은 1960년대부터 서서히 부각되어 온 히피즘의 영향이 컸다. 히피즘이 깨어 있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보헤미안은 대중적인 패션으로 안착됐다.
다시 30년이 지난 지금, 보헤미안은 또 패션의 중심에 서 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구찌」를 통해 히피즘이 차츰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이제 와서 이렇게 봇물 터지듯 유행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1990년대에 제안된 히피즘이 다소 복고적인 발상에서 집시의 ‘냄새’ 정도를 풍겼다면 지금은 모든 디테일과 아이템, 소재에 집시적인 것을 찾아 진한 풍미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액세서리. 현재 보헤미안 패션의 가장 확실한 마무리는 알록달록하고 비교적 알이 굵은 여러 종류의 목걸이로 장식되는데, 이들은 보석이 아닌, 다양한 원석들로 만들어진다. 원석, 정확하게는 ‘젬 스톤(Gem stone)’으로 불리는 이들은 2003년부터 컬렉션에서는 중요한 부자재로 다루어져 왔다. 그만큼 부착되지 않는 옷이 없을 정도인데,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석은 ‘터키석’과 ‘마노’, ‘마산옥’ 등이 있다.
왜 이런 천연석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수백 년 전 유럽을 떠돌던 집시들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 있다. 집시는 인도지방의 유랑민족으로,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으로 유입됐다. 유럽 각지를 떠돌던 이들은 특유의 동양적 특성 때문에 서양인들에게는 신비의 대상인 동시에 멸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들은 중동을 원산지로 하는 터키석이나 마노, 옥 등의 동양적 원석들을 풍성히 걸치고 있었는데, 서양인들이 집시로부터 점성술을 볼 때 등장하는 둥그런 구슬 역시 대부분 마노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터키석과 마노는 주술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다.
터키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식품으로, 신성한 돌로 알려져 있다. 마노 역시 사람을 유쾌하게 하거나 신의 은총을 주며, 활력과 승리를 보장한다는 믿음이 담겨진 젬스톤이다.
아마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흘러든 집시들에게 이 같은 돌을 지니는 것은 커다란 마음의 안식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또 온갖 멸시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그들은 수많은 젬 스톤을 목에 걸거나 옷에 장식해 왔다. 이것은 서양인에게는 젬 스톤 전설과 맞물려 이들을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했으며, 오랜 세월 신비의 흉내를 내려는 이들이 효과적인 장신구로 사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젬스톤은 호기심어린 ‘패션’ 액세서리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그 이면의 의미보다는 돌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광택과 컬러에 환호한다. 우리는 1970년대 보헤미안이 인기를 모았던 이유로, 반사회적인 히피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21세기에는 그런 심각한 정신은 없다. 그저 본질적인 자유와 방랑이며, 「샤넬」 수트에 대한 반항이 내면에 깔려 있는 정도이다. 어쩌면 패션의 매력이란 바로 그러한 것일지 모른다. 신성한 돌에서 예쁜 돌이 되어버린 터키석의 현재. 그것이야말로 젊은이들의 낙관성을 고스란히 투영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이 시대의 거울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