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트’가 그리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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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오전 9:29:51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었듯이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버버리(Burberry)」가 아닐까 한다. 「버버리」가 아닌 매장에서도 우리는 ‘버버리(트렌치)’를 사러 왔다는 고객을 흔히 볼 수 있다. 언제부터 트렌치 코트가 ‘버버리 코트’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여기에는 심슨 부인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영국의 윈저 공과 할리우드 스타들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윈저 공은 당시 남성 사회의 중대한 패션 아이콘이었다. 그는 유독 「버버리」의 마니아였는데, 언제나 자신의 코트를 찾으면서 ‘내 버버리 어디 있지?’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감각은 남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영국 트렌치에 매료되게끔 만들었으며, 이 같은 감성은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보다 전형적인 것으로 굳어져 갔다.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 로버트 테일러가 입고 있던 빗속의 트렌치 코트나,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깃을 세우고 등장한 버버리는 시대를 풍미한 낭만의 대명사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영국 풍의 트렌치 코트를 얘기할 때 「버버리」 못지않게 중시되는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국내에서는 「버버리」 만큼의 인지도는 없지만, 영국에서는 그야말로 트렌치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쿠아스큐텀」이다. 「아쿠아스큐텀」은 이름 자체가 이미 ‘방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방수 트렌치 코트로 유명하다. 또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버버리」 역시 방수 트렌치로 유명한데 이 두 회사의 차이를 꼽자면, 「아쿠아스큐텀」은 울 소재에 방수가공을, 「버버리」는 면 소재에 방수가공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 두 회사는 모두 19세기 중엽에 방수가공 원단을 생산했다. 「아쿠아스큐텀」은 울 소재에 방수가공을 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무엇보다 1차 대전 때 참호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영국 군인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버버리」와 「아쿠아스큐텀」이 방수가공에 각기 성공했던 1850년대 무렵은 영국으로선 최고의 번성기라 할 수 있는 빅토리아 시기였다.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산업혁명은 영국의 면직물 및 모직물 산업을 세계적인 중심에 올려놓았는데, 바로 이 같은 기반을 통해 직물가공 산업과 염색 산업이 이제 막 그 싹을 틔우던 참이었다. 또한 당시 영국에서는 대박람회를 통해 놀라운 기술의 탄생을 널리 알려, 기성복으로서 패션혁명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방수 트렌치를 탄생시킨 「버버리」와 「아쿠아스큐텀」의 개가는 추후 영국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가 또 하나의 브리티시 브랜드로 기억하고 있는 「닥스(Daks)」도 20세기 초에 이 같은 전통의 대를 이어 설립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닥스」 역시 트렌치 코트로 유명하다고 인식할 정도로 ‘실제 「닥스」는 ‘바지’에서 맹위를 떨쳤던 브랜드’ 이제 트렌치 코트 하면 영국이란 단어와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버버리」의 코트 역시 한때 영국 군인들을 위한 밀리터리 코트로 제작된 바 있다. 「아쿠아스큐텀」이 자랑하는 보온성에는 다소 못 미쳤으나 이것은 「버버리」에게도 큰 명예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의 전쟁이란 상류층이 군인계급으로 참여하는 사회구조였음을 감안할 때 군용품을 납품하는 것조차 영예로운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 기반한 정서는 영국패션의 역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파리에서는 크리스찬 디올이나 이브 생 로랑 같은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있어야 최고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면, 런던에서는 사회적 기여와 명예를 획득한 기업이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다. 영국 왕실 디자이너였던 하디 에이미가 전후에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유틸리티웨어를 보급하는 데 앞장 섰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는 모직과 면직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원단인 나일론이 새로운 트렌치 코트의 소재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낭만을 기대하는 보수적인 고객들은 「프라다」 스타일의 나일론 트렌치보다는 여전히 「버버리」의 면 개버딘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지나온 100년의 전통만큼이나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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