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온 나탈레 에 펠리체 안노 아 뚜띠(Buon Natale e Felice Anno a tutti!)! “여러분 모두에게 기쁜 성탄절과 복된 새해를 기원합니다!” 글을 쓰는 시점과 활자화되는 시점이 차이가 나니까 아마 독자들에게 이 인사는 때늦은 인사가 될 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다. 나탈레(natale-여기서는 소문자)가 ‘태어난’이라는 뜻이니까 우리가 ‘성탄절’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예수의 탄생일이다. 부온(buon)은 ‘좋다’는 형용사인데 뒤에 오는 명사의 성과 수와 자음·모음 여부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한다. 사전에서는 부오노(buono)라고 찾아야 그 뜻이 나올 것이다. 펠리체 안노는 영어의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를 이탈리아어로 그대로 옮긴 것으로, 원래 이탈리아에서 사용하던 말은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새해 첫날은 ‘카포단노(Capodanno)’라고 한다. 즉, 1년 중의 첫 날 이라는 뜻이다. 안노(anno)는 ‘년(年)’이라는 뜻이고, 카포(capo)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니 카포단노는 카포 디 안노(capo di anno), 즉 한 해의 첫 날이 되는 것이다. 새해 인사는 ‘부온 카포단노(Buon Capodanno)’.
유럽 지역 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우세하다. 더욱이 바티칸 시국(市國)이라는, 교황이 수장인 나라를 품고 있는 이탈리아는 전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도인 가톨릭 국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방식이 가톨릭 교리에 일치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도들은 매주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믿음은 가지되 종교적 전례를 따르지는 않는, 이른바 ‘냉담자’들이다.
가톨릭 교리를 밑바탕으로 하여 법으로는 혼전동거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탈리아에서의 동거는 성행하고 있다. 일단 한 번 결혼하고 나면 이혼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란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법적 노력이 현실적으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혼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면 서류를 제출하고 3년 동안 별거하며 기다려야 이혼이 가능하다고 하니, 쉽게 결혼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다 이혼 비용도 매우 많이 든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혼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이때는 재혼을 하지 못한단다. 잠깐, 여기 기술한 내용은 법전을 찾아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탈리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겠다.
쉽게 결혼하지 않으니, 여자 평균이 35세라고 할만큼 결혼 연령이 매우 늦어지고, 아예 결혼할 생각 없이 연애만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인구 감소는 이탈리아에서도 심각한 사회 문제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인구감소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본다.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아니라면, 인구감소율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완고한 결혼 제도는 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순기능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역기능도 있는 것 같다.
다시 가톨릭 이야기로 돌아가자.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공휴일은 종교 기념일이다. 지난 회에서 12월 7일과 8일이 공휴일이었다고 썼는데, 12월 7일은 밀라노의 수호성인인 산탐브로조(S. Ambroso, 성 암브로조) 축일로 밀라노만 휴일이었고, 12월 8일은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이탈리아 전역의 축일이었다. 모든 학교들은 나탈레부터 2주간 짧은 방학에 들어가고, 부활절이 오면 또 전후로 1주일 정도 논다. 사회 제도의 대부분은 종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적이지 않은 나라가 이탈리아다.
여름휴가가 끝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바로 나탈레로 넘어간다. “나탈레에 뭐 할거냐?” “어디 갈거냐?” 하는 질문을 정말 백 번도 넘게 받은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대답은 ‘남편 혹은 아내, 혹은 약혼자와 함께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여행을 가는 것인데, 겨울에는 주로 ‘산’, 즉 알프스에 가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나탈레 바칸자(vacanza, 공휴일, 휴가, 방학 등을 아우르는 총칭) 때는 산으로 놀러가는 경비가 만만찮게 든다고 한다.
그러면 거의 나탈레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 밀라노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본 연재 밀라노 편의 첫 회에 밀라노 두오모 사진을 함께 보냈었는데, 지금의 두오모는 그때보다 그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 공사현장을 가려놓은 입간판 옷도 갈아입었다.
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ihnhee@kumo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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